실패할 수 없는 투자… 스토리가 더해진 야구는 '공놀이' 그 이상이다
[파이낸셜뉴스] "형우 형이 그랬습니다. '내가 반지 끼게 해줄게. 빨리 계약해라'라고요. 이제 계약했으니 형한테 전화해서 우승 반지 끼워달라고 해야겠습니다."
지난 28일, 삼성 라이온즈와 4번째 FA 계약을 마친 강민호의 인터뷰가 공개되자 야구 커뮤니티는 그야말로 뒤집어졌다. "이건 계약이 아니라 프러포즈다", "낭만 한도 초과다", "벌써 내년 한국시리즈 우승한 기분이다". 팬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40세를 넘긴 선후배 사이의 대화라고는 믿기지 않는, 마치 로맨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이 맹세는 올겨울 스토브리그의 하이라이트가 되기에 충분했다.
사실 프로야구는 냉정한 비즈니스의 세계다. 하지만 스토리가 결여된 야구는 그저 지루한 '공놀이'에 불과하다. 그 공놀이에 서사가 입혀지고, 땀과 눈물, 그리고 역사가 더해질 때 비로소 팬들은 열광하고 '낭만'이라 부른다. 그런 의미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이번 겨울은 그 어떤 해보다 낭만적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최형우, 그리고 강민호가 있다.
특히, 최형우는 삼성 팬들에게 단순한 강타자가 아니다. 그는 '삼성 왕조' 그 자체다. 통합 4연패. 그 어떤 팀도 범접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전무후무 위업을 달성했던 시절, 사자 군단의 4번 타자는 계속 최형우였다. 그러나 그가 떠나고, 박석민, 차우찬, 김상수 등 왕조의 주역들이 하나둘 짐을 싸면서 삼성의 시계는 멈췄다. 제일기획 이관 후 투자는 위축됐고, 왕조의 몰락은 처참했다. 최형우가 떠난 이후 삼성은 단 한 번도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최형우의 귀환은 단순한 전력 보강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모 구단 관계자는 "최형우는 삼성이 아니었으면 절대 이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다른 팀으로 이적하면 돈때문에 이적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명예도 중요한 선수지 않나. 하지만 자신의 데뷔 팀이고 전성기를 함께했기에 삼성 팬들도 인정한 것"이라며 "만일 다른 팀이었다면 옮긴 최형우도, 놓친 KIA도 거센 비난에 직면했겠지만, '친정 삼성'의 구애가 워낙 간절했기에 그나마 잘 마무리 된 것 같다"라고 사견을 덧붙였다.
그리고 이는 삼성이 불혹을 훌쩍 넘긴 그에게 40억 원이 넘는 거액을 투자한 이유이기도 하다. 일각에선 '오버페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 내년 시즌 성적이 수직하락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다. 그렇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금액에는 당장의 성적표에는 적히지 않을 '값어치'가 포함되어 있다.
잃어버린 왕조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것, 떠나간 팬들의 가슴을 다시 뛰게 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팀의 레전드가 타향이 아닌 '대구 삼성라이온즈 파크'에서 명예로운 은퇴식을 치르게 하는 것. 이 모든 서사의 마침표를 찍는 비용으로 41억 원은 결코 아깝지 않다.
이미 쏟아지는 팬들의 반응과 흘러넘치는 스토리텔링만으로도 투자의 가치는 증명되고 남는다.
이는 강민호에게도 정확하게 그대로 적용된다. 그에게 지급하기로 한 20억원에는 그 가치가 상당 부분 포함돼있다. 강민호 또한 당장 내년 시즌 성적이 급락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이기 때문이다.
강민호의 말처럼 최형우는 약속했다. "반지를 끼워주겠다"고. 그것은 일생동안 단 한번도 반지를 끼어보지 못한 강민호에게, 그리고 왕조의 부활을 꿈꾸는 수십만 삼성 팬들에게 건네는 최고의 프러포즈였다. 만약 강민호가 그토록 원했던 우승반지를 끼고 은퇴한다면 낭만의 한도는 여기에서 '제곱'으로 불어난다.
실패할 수 없는 투자다. 아니, 이미 성공한 투자다. 2026년, 라팍의 푸른 잔디 위에서 펼쳐질 강민호와 최형우 그들의 '라스트 댄스'에 벌써부터 가슴이 웅장해지는 이유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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