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살다 별일을 다…" 뼈있는 농담으로 악재 정면 돌파
이탈 공백 지운 '젊은 피'… 위기 속에 더 단단해진 거인들
"가을 점퍼 당장 사세요" 팬들 울고 웃긴 명장의 '사이다 약속'
이탈 공백 지운 '젊은 피'… 위기 속에 더 단단해진 거인들
"가을 점퍼 당장 사세요" 팬들 울고 웃긴 명장의 '사이다 약속'
[파이낸셜뉴스] "살다 살다 별일을 다 겪었습니다."
우승 청부사의 입술을 뚫고 나온 첫마디는 헛웃음이 섞인 자조였다. 하지만 그 씁쓸한 농담 속에는 위기를 돌파해 낸 단단한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김태형 롯데 자이언츠 감독 특유의 거침없는 입담이 2026 KBO 미디어데이를 유쾌하게 뒤집어놓았다.
26일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6 신한 SOL뱅크 KBO 미디어데이'. 각 구단의 출사표가 이어지는 가운데, 단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롯데의 수장 김태형 감독이었다.
올해 초 롯데는 대만 스프링캠프에서 일부 야수들(나승엽, 고승민, 김동혁, 김세민)이 불법 도박장에 출입해 무더기 징계를 받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팀 분위기가 바닥을 칠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악재였다. 김 감독은 이를 굳이 피하지 않았다. "작년도 그렇고 올해 초반에도 살다 살다 별일을 다 겪었다"며 뼈있는 농담으로 정면 돌파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했던가. 수장의 유쾌한 방패막이 덕분인지 롯데는 시범경기 단독 1위라는 파죽지세로 정규시즌을 맞이하게 됐다. 김 감독은 "올해 선수들이 단단해졌다는 느낌이 든다"며 "시범경기를 통해 보여준 좋은 모습을 정규 시즌에도 이어가겠다"고 담백하게 희망을 노래했다.
특유의 위트는 질의응답 시간에도 빛을 발했다. 올 시즌 당기고 싶은 변화의 방아쇠가 무엇이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방아쇠를 좀 많이 당기고 싶다"며 좌중을 폭소케 했다. 주축 선수들의 이탈로 생긴 공백에 대해서도 "한태양, 이호준 등 젊은 피들이 제 역할을 너무 잘해주고 있다. 선수들이 하나로 뭉쳐 있어 올해는 정말 좋은 흐름으로 갈 것"이라며 흔들림 없는 신뢰를 보냈다.
이날 미디어데이의 백미는 단연 한 롯데 팬의 절절한 질문이었다. "올해는 정말 가을 점퍼 사도 되느냐"는, 롯데 팬들의 오랜 염원과 불안이 교차하는 날카로운 물음표.
여기에 김 감독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이다' 답변을 날렸다.
"사셔서 지금부터 입으시라. 날씨가 지금도 쌀쌀하다. 어차피 가을까지 입을 거니까 사세요."
현장에서는 일제히 웃음과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상처받았던 팬들의 마음을 단숨에 녹여버린 완벽한 대답이었다. 김 감독은 이어 "작년은 아쉬웠지만 선수들이 많은 것을 느끼고 자신감도 얻었다. 신구 조화를 통해 올해는 꼭 가을 야구에 가겠다"며 팬들에게 묵직한 약속을 건넸다.
도박 파동이라는 최악의 스크래치를 입고도 시범경기 1위로 증명해 낸 롯데. 그리고 그 중심에서 선수단을 든든하게 감싸 안으며 유쾌한 도발을 던지는 김태형 감독. 롯데 팬들의 옷장 속에서 깊게 잠들어 있던 가을 점퍼가, 올해는 정말로 사직구장의 차가운 밤공기를 가를 수 있을 것 같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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