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정부의 연금개혁안이 결국 구체적인 수치가 빠진 채로 27일 발표됐다. 정부는 이날 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공개하며 보험료율 인상이 필요하다는 방향성은 제시했으나 세부 수치는 밝히지 않았다. 정부는 대신 세대별 형평성을 고려해 연령별 보험료율 차등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보장성 핵심 지표인 소득대체율에 대해선 기초연금, 퇴직연금 등과 함께 구조개혁 논의와 연계해 검토하겠다는 말로 얼버무렸다. 우려했던 대로 알맹이가 빠진 '맹탕' 개혁안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향후 보다 폭넓은 논의를 위해 세부 수치를 정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명백한 책임 회피다. 국민연금의 적자 전환, 기금 고갈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돈을 내는 인구는 줄고 연금을 지급받는 고령층이 급속히 늘면 연금 재정은 악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 3월 정부가 발표한 연금 재정 추계에 따르면 연금 수입이 지출보다 많아지는 시점이 2041년이다. 그러다 2055년이면 기금이 완전히 소진돼 한 푼도 남지 않게 된다. 다급한 시점에 개혁을 진두지휘해야 하는 것은 정부의 책무다. 그런데도 정부는 개혁 총대를 슬그머니 내려놓고 여론 눈치만 보고 있으니 실망스러운 일이다.
연금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가 지난달 내놓은 중구난방 의견도 개혁과 한참 멀었다. 재정계산위는 무려 24개나 되는 시나리오를 발표해 말뿐인 개혁안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급기야 초안에 없던 소득대체율 인상안까지 최종 보고서에 담아 배가 산으로 가는 형국이었다. 국회의 요란한 개혁 논의도 마찬가지다. 지난해부터 연금 개혁을 논의하던 국회는 올해 4월까지 개혁안을 내놓겠다더니 보험료 인상에 여론이 싸늘하자 갑자기 정부로 공을 넘겼다. 사명감은 없고 다들 폭탄 돌리기에만 바빴던 것이다.
더 내고 늦게 받는 연금을 환영할 사람은 사실 없다. 그렇지만 지금 구조의 연금 설계는 미래 세대에 크나큰 부담이어서 용납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과 비교해도 모수 개혁은 설득력이 있다. 소득대체율은 42%선에서 비슷하지만 보험료율은 OECD 평균치가 우리의 2배가 넘는다. 현재 연금 재정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고 최선의 개혁안으로 국민들 이해를 구하는 것이 정부와 국회가 할 일이다. 정부안은 이달말 국회로 넘어간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 국회가 제대로 연금 개혁에 나설 수 있을 지 의구심이 든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미뤄서 될 일이 아니지 않은가. 지금은 마지막 개혁의 골든타임이다. 국가 미래를 위해 국회가 이제는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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