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진 감독 인터뷰
[파이낸셜뉴스]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핸드폰도 못 볼 정도로 몰입했다가 영화가 끝나면 바로 핸드폰을 보길 원했죠. 영화 속 어느 게 진짜고 가짜인지 바로 찾아보면서 영화가 현실의 연장선상에 있길 바랐어요.”
27일 개봉한 영화 ‘댓글부대’ 안국진 감독의 바람은 어느 정도 통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누군가가 말했다. 사회부 기자로 열연한 손석구가 극중 단독으로 쓰는 대기업 입찰 비리 사건 기사가 그때 그 사건이 아니냐고. 그렇게 시작된 궁금증으로 영화 속 사건 관련 키워드를 검색하다보니 도입부 촛불집회를 주도한 네티즌 ‘앙마’ 역시 실재했다.
영화 속 설정처럼 PC통신 유료화에 반대한 바로 그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1992년 PC통신 초창기 케텔이 하이텔로 바뀌는 과정에서 서비스가 유료화 되자 소수의 이용자가 촛불집회를 한 것은 사실이었다.
'사실에 거짓을 조금 보태면 진짜보다 더 진짜 같다'는 영화 속 대사처럼 안 감독은 “(영화 속 에피소드는) 대부분이 진짜다. 사실에 거짓을 살짝 섞어서 구성했다. 마지막에 나온 것은 블랙코미디와 같은 것이다. 사실적시명예훼손을 피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부대'는 기자 출신 장강명 작가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대기업 비리를 폭로하는 기사를 썼다가 댓글부대의 공작으로 하루아침에 오보를 낸 ‘기레기’로 전락한 상진(손석구 분)이 온라인 여론을 조작했다는 익명의 제보자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배우 김성철, 김동희, 홍경은 여론을 조작하는 ‘팀알렙’이라는 댓글부대 멤버를 연기했다. 온라인 아이디 ‘찻탓캇’(김동휘)은 정직 후 명예 회복을 노리는 상진에게 접근해 댓글부대의 실체를 알려줄 테니 기사를 써달라고 제안한다.
눈여겨본 손석구 스타 되기 3-4달전 캐스팅 "상담사 같아, 존경"
△ 원작소설과 많이 달라졌는데
“소설 원작과 많은 부분 다르다. 연출 제의를 받고 원작을 읽었는데, 뭘 빼고 뭘 남길지 바로 그림이 그려졌다. 원작이 인터넷 너드(오타쿠)가 기자에게 제보하는 내용인데, 그 구성이 재미있었다. 정보를 왜곡하는 세력과 진실을 추
구하는 기자 간의 대립 관계를 영화에선 더 부각하고 싶었다. 그래서 찻탓캇이 제보하는 구성을 가져왔다(찻탓캇이 자신들이 한 여론 조작 사례를 상진에게 들려주는 형식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 기자들을 많이 만났다고?
우선 새로운 기자상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 기존 영화 속 스테레오 타입 말고, 기자들도 공감할만한 기자. 요즘 기자 직업군을 싫어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상진이 비호감 캐릭터가 될 수도 있었는데, 배우 손석구가 캐스팅되면서 허당미 있으면서도 좀 귀여워진 측면이 있다. 기자들은, 아직 조직문화에 녹아들지 못해 객관화가 잘되어 있다고 판단한 1년 미만 신입 위주로 많이 만났다. 한 명의 인간, 직장인으로서 접근이 많이 됐다.
△ 핫한 배우 손석구는 언제 어떻게 캐스팅 하게 됐나
손석구는 평소 눈여겨본 배우였다. “손석구 아니면 큰일인데” 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그 나이대 대체할만한 배우가 없다고 생각해 초고 탈고하고 바로 접촉했다. 그때가 드라마 ‘해방일지’와 영화 ‘범죄도시2’로 스타가 되기 3-4달 전이었다. 처음엔 손석구가 “저 갖고 안 될 거 같은데 괜찮냐”라고 했는데, 몇 달 뒤에 “이젠 될 것 같다”라고 했다.
△ 감독이 주목한 손석구 출연작은?
영화 ‘뺑반’의 한 장면이었다. 류준열과 공효진을 태우고 운전하는 신. 대사도 없었다. 검사이면서도 연인으로서 권력에 뒤처진 남자의 복잡한 마음이, 대사 없이 잘 표현됐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 말을 했더니, ‘선견지명 있는 척 하지 말라’고 하더라.(웃음) 손석구는 인간적으로도 존경한다. 같은 말도 젠틀하게 하고, 감독으로서 스트레스 받는 것도 쉽게 넘기게 도와줬다. 많은 위안을 받아서 마치 상담사 같았다. 있는 척도 하지 않고, 세 남자 배우도 (손석구가) 재밌게 해줬다. 덕분에 놀듯이 찍었다.
△'팀알렙' 역 세 배우의 연기와 합도 좋았다
손석구가 대체할 배우가 없다고 생각했다면 20대 배우들은 풀이 너무 많아서 고민이었다. 영화계가 새로운 인물을 캐스팅하는 데 보수적인 편이라 산업 관계자를 설득하는 데 애를 썼다. 홍경 캐스팅이 기억에 남는데, 캐스팅 과정에서 이미지만 보고 찾는 단계가 있다. 그때 연출부가 동일인인지 모르고, 홍경 사진 다섯 장을 후보에 올렸다. “같은 애야?” “‘D.P.’에 나왔어?” “물건이다.” 그렇게 만났다.
△홍경이 맡은 팹택 역할은 어중간할 수 있는 역이다.
시나리오 상에서 캐릭터 매력도가 가장 낮은 배역이었다. 출연 제의를 했더니 감독님 집에서 만나면 안 되냐고 해 우리 집에 와서 한 네다섯 시간을 얘기했다. 그냥 ‘감사합니다’하고 수락할 법 한데 “작품의 비전을 보여 달라”고 해서 진짜 깊이 고민하는 친구라고 느꼈다. 홍경과의 만남은 시나리오를 수정하게끔 만든 동력이 됐다. 한 집에서 지내는 세 배역의 밸런스가 맞지 않았는데 홍경과 미팅 후 그 밸런스를 맞출 수 있었다. 김동휘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를 보고 주목했다. 직접 만나보니 평범한 얼굴인데 눈빛이 날카로웠다. 또 아주 착하다. 근데 착하다는 것은 속을 알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니 캐릭터와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속 밈 등은 어떻게 작업했나?
인터넷 문화에 친숙한 친구들로 연출부를 꾸렸다. 처음에는 ‘밈’(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유행하는 사진과 영상 및 농담 등)을 전문업체에 맡겼는데, 왠지 가짜 같더라. 그래서 우리끼리 그림판으로 낄낄대면서 만들었고 그게 실제로 영화에 많이 사용됐다. 어두운 편집실에서 작업하면서 어느 순간 우리가 ‘팀알렙’이 된 기분도 느꼈다.
△밈의 수위는 어떻게 조율했나?
인터넷 문화에 완전 빠져있는 연출부원이 있었는가 하면 반대로 커뮤니티 문화를 B급으로 은근히 치부하는 친구도 있어서 그들 모두에게 확인 받았다. 수위조절에 있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기분 나쁜 정도가 너무 주관적이라는 것이었다. 어느 한쪽을 욕하는 내용이 나오면, 그냥 반대쪽도 욕하는 식으로 밸런스를 맞췄다. 누군가를 조롱하는 욕의 경우, 씁쓸해도 웃고 마는 선을 지키려했다.
"영화는 무엇인가" 고민 담겨..."양산형 영화 시대 끝났다"
“요즘은 영화보기 방식을 보면 서로 해석을 주고 받고 재생산하는 방식으로 소비가 된다. 그게 인터넷 문화이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영화 곳곳에 여러 가지 많은 것을 숨겨 놨다”고 했다. “홍보사나 제작사도 모르는 것도 있다. 솔직히 관객들이 찾아주길 바란다. 저로선 그것들이 찾아지는 것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끝내 못찾으면 어떡하지? 걱정도 된다”고 부연했다.
어디에 숨겨놨냐는 물음에는 “그림 상에도 많고 아이디라든지 실제 사진도 있는데, 저건 들어가면 큰일 나는 거 아냐 그런 것도 들어가 있다. 실제로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게 구성하고 싶었다. 해석이 될수록 혼란스러워지길 바랐다”고 했다.
제목 때문에 정치영화로 오인된다는 지적에는 “정치적이지 않다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면서도 “그런데 정치적이지 않은 입장에서 보면 정치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명쾌하지 않고 혼란스런 엔딩이 상업영화로서 단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는 “지금의 엔딩이 현실적이면서도 혼란스러운 쾌감이 있을 것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2023년 3~6월 이 영화를 찍었는데, 그때 전국에서 우리 팀만 영화를 찍고 있었죠. 이게 얼마나 복인지 체감하며 촬영했습니다. 몇 달 뒤 한 편 더 크랭크인한다고 들으면서 영화계가 걱정이다, 우리는 얼마나 다행이냐, 그러다 크랭크업이 점점 다가올수록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지? OTT로 갈거야, 영화는 없겠지, 그런 씁쓸한 대화를 나눴어요.”
이 때문에 “영화는 뭔지”에 대한 원론적 고민을 많이 했다. 안 감독이 내린 결론은 “영화는 더 영화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양산형 영화가 설자리가 없어지고 있다고 믿어요. ('살인의 추억'과 '지구를 지켜라'등이 나왔던) 2000년대 초반 르네상스 시절 한국영화처럼, 한국 만이 할 수 있는,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영화만 살아남을 겁니다. 개성을 갖고 잘 만들고, 질문을 던지고, 명확한 이야기가 있어야 하죠. 그런 면에선 떳떳한 것 같습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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