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영화계와 관객들 모두 기다리는 '여름 시즌'이 다가왔다. 국내 극장가는 올해 역시 상황이 녹록지 않지만, 이번 여름에도 기대작들은 존재하기에 '희망'은 계속되고 있다. 올 여름 한국 영화 기대작들을 탄생시킨 제작자들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 = "규남, 현상과 같이 시원하게 달리는 느낌을 받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는 7월 3일 개봉을 앞둔 '탈주'(감독 이종필)는 내일을 위한 탈주를 시작한 북한병사 규남(이제훈 분)과 오늘을 지키기 위해 규남을 쫓는 보위부 장교 현상(구교환 분)의 목숨 건 추격전을 그린 영화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연출했던 이종필 감독과 당시 제작을 맡았던 더램프가 다시 한번 더 의기투합했다.
더램프의 박은경 대표는 신작 '탈주'에 대해 "날 것 같은 느낌의 추격전"이라며 "극장에서 사운드와 함께 몰입해서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자신했다. 그도 그럴 것이 '탈주'는 개봉에 앞서 진행된 시사회에서부터 많은 호평을 받았다. 꿈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자신의 선택을 믿고 직진으로 내달리는 규남이 주는 쾌감, 그를 쫓는 현상의 긴박한 추격전으로 94분 내내 눈을 뗄 수 없게 만든 몰입감이 영화의 강점이다.
무엇보다 '탈주'는 감독과 배우의 재능이 마음껏 발휘된 작품이다. 배우의 생고생이 실감되는 이제훈의 생생한 전력질주 장면과 이전에 본 적 없던 새로운 캐릭터로 신선한 충격을 안긴 구교환의 열연은 물론, 메시지를 풀어가는 방식부터 감각적이고 스타일리시한 연출까지 그 시너지가 '탈주'의 흥행을 기대케 하는 요인이다. 이는 제작자로서의 탁월한 선구안으로 작품을 세팅한 박은경 대표의 활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박은경 대표는 제일기획과 IBM, 쇼박스 마케팅과 투자팀을 거친 후 제작자로 '동창생'(2013) '쓰리썸머나잇'(2014) '해어화'(2015)를 차례로 선보였고,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택시운전사'(2017)로 첫 1000만 영화를 남겼다. 이후 '말모이'(2019)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 '인생은 아름다워'(2022) '유령'(2023)까지 작품성과 대중성을 다잡은 영화로 국내 대표 여성 제작자로 입지를 더욱 공고히 했다. 그는 이전보다 더욱 치열하게 영화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며 "영화는 나보다 오래 산다, 어떤 영화가 오래 살아남을지 모르니 책임감을 갖고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진심을 전했다. '탈주' 개봉을 앞둔 박은경 대표를 만나 영화의 비화 등 여러 이야기를 들어봤다.
-'탈주'가 개봉을 앞두고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소감은. 또 여름 개봉작으로 선택한 배경이 궁금하다.
▶개봉을 하면 다들 긴장하곤 하는데 이번에도 역시 그렇다.(웃음) 여름 개봉은 배급사에서 제안했고, 여기에 동의했다. 일단 뛰고 달리는 영화이지 않나. 여름에 나오는 작품인데 도파민 가득한 에너제틱한 영화로, 규남 현상과 같이 시원하게 달리는 느낌을 받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이야말로 극장 가기에 너무 좋은 계절이고, (기말) 시험도 끝나셨으니까 이제 극장으로 '탈주'를 하시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다.(웃음) 여담으로 플러스엠과 함께해서 너무 좋다. 진짜 한 팀으로 열심히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스코어는 하늘이 내리신다고 하지 않나. 잘 나오길 기대하지만 이렇게 스태프들 그리고 배급사까지 함께 해온 과정들도 좋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다.
-'탈주'는 제작자로서 어떤 매력에 끌리게 된 작품인가.
▶'공작' '수리남'을 쓰신 권성희 작가님과 친분이 있다. 저희 회사와도 계약이 돼 있는데, 작가님께서 시나리오를 한번 봐달라고 하셨다. 워낙 재밌는 기획이었고, 잘 만들면 너무 재밌겠다 싶더라. 작가님께서 전적으로 믿고 맡겨주셔서 신나게 하게 됐다. 또 연출자가 아니라 그림을 그리고 이런 건 아니지만, 일단 자연이 많이 나올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요즘 영화들이 대부분 세트도 많은데 이건 자연을 담을 수 있겠구나, 자연광에서 뛰고 달리는 배우들을 담으면 근사하겠구나, 이걸 스크린에서 보면 도파민을 느낄 수 있겠구나 싶었다. 젊은이들, 청춘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이들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지금 나한테도 하고 있는 얘기일 수 있겠다는 것에 흥미가 생겼다.
-'탈주'를 제작하면서 고민이 됐던 지점이 있다면.
▶남북 영화가 많긴 하지만 북한만 나오는 영화는 많지 않다. 북한만 나올 경우 북한의 실상을 보여주는 영화들이 많다. 반면 '탈주'는 그런 (실상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다 보니까 (제작에) 고민이 있었다. 그래서 체제나 이념을 다룬 영화처럼 실상에 포커스를 맞추지 말자 생각했다. 그 대신에 북한 관련 자료 조사를 엄청나게 하고 다큐멘터리도 많이 찾아봤다. 일단 많이 알아야 하니까. 그다음엔 여기서 우리가 추구하는 영화의 톤이 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 그래서 웨스 앤더슨 작품처럼 영화만의 컬러를 가져가려고 했고, 러시아와 동유럽 쪽 미술을 굉장히 많이 참조했다. 영화만의 세계관이지만 이질적이지 않은 세계관을 구축하기 위해 애를 많이 썼다. 파티나 장성들이 나오는 장면은 더 익스트림하게 구현한한 것도 있다. 훈장 이런 것들을 조금 더 영화적으로 표현하는 등 이런 디테일한 지점에 신경을 많이 썼다.
-추격전이 가장 큰 매력인 영화다. 제작자로서 이 추격전이 다른 영화와 어떤 점에서 강점과 차별점이 있었다고 생각했나.
▶날 것 같은 느낌이 있다. 내가 진짜 달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가장 큰 것 아닌가 한다. 모든 영화에 공감하기 어렵지만 '진짜 나 같다'고 느껴지는 지점들이 좀 많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지뢰를 밟으면 내가 밟은 것 같고, 내가 힘들게 터치다운을 하는 것 같고 나처럼 느껴지는 지점들이 라이브 하게 다가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극장에서 볼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사운드도 돌면 더 보기 좋겠더라. 극장 영화가 모두의 이슈이긴 한데, 극장에서 봤을 때 '몰입해서 봤다, 재밌었다, 보기 잘했다' 이런 느낌이 들길 바랐다.
-자연을 담고 싶은 바람도 있었다고 했는데, 로케이션도 중요했을 것 같다.
▶우리가 DMZ에 들어갈 수 없으니까 헌팅도 굉장히 많이 했다. 어떻게 보면 이건 일종의 속임수다. 북한인 척하는 데 무리가 없어야 했는데, 휴전선 인근에 목장들이 많더라. 한국이 생각보다 목초지가 많다. 온갖 목장을 다 뒤졌고 안 가본 목장이 없는 것 같다.(웃음) 이쪽 저쪽 다 다른 장소를 이어서 붙이기도 했고, CG의 도움도 생각보다 많이 받았다.
-이종필 감독과 드라마를 제외하고 영화로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 이어 두 번째로 작업했고, 최근 크랭크인한 세 번째 작품 '파반느'까지 함께 하고 있다. 제작자와 감독으로 지속적인 협업이 가능했던 배경이 궁금하다.
▶이종필 감독은 재밌고 오픈돼 있는 데다 매력적이고 좋은 사람이다. 그래서 스태프들이 같이 일하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 수용성이 높아서 스태프들이 굉장히 다양하게 의견을 편하게 낸다. 감독님이 딱 중심을 잡고 있으니까 그런 부분에서 일하는 데 편안하다. 영화는 '탈주'가 두 번째 작업이었고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까지 하면 총 네 편째인데 계속 발전적인 관계가 될 것 같다.
-'탈주'의 감독으로 이종필 감독이 제격이라 생각한 이유가 있었나.
▶장르물을 한번 하고 싶다는 얘기를 계속 피력해 왔고, 이번에도 잘 맞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건 '신뢰' 같다. 작품의 본질만 보고 있으니까, 그냥 딱 이 사람이 여기에 집중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우리의 유일한 공통점은 둘 다 매우 아침형 인간이다. 아침에 일하면 좀 심심할 때가 종종 있는데 그때 (아침형 인간이라는 공통점이) 같이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지점이 있는 것 같더라.
-'탈주'의 스타일리시하고 감각적인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작품을 함께 하면서 새롭게 느낀 면모가 있다면.
▶더 성장했다고 느낀 게 굉장히 전후좌우를 다 살피며 열심히 하더라. 그런데도 지지 않더라. 뭔가를 가져가야 하는 지점에 있어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것을 충분히 가져가는 면모도 좋더라. 예를 들어 목표가 있을 때 배우들과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좋은 결과를 끌어내는 점이다. 궁극적으로 영화만 보니까 그렇게 선택하면서 작품을 완성하지 않았나 한다.
-이제훈에게는 어떻게 제안하게 됐나.
▶이제훈은 '고지전'으로 친분이 있어서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저도 회사(더램프)를 하면서 뭔가 같이 하면 좋겠다 했는데 그동안은 선배님들과 작품을 많이 하다 보니까 제안할 만한 게 없었다. 그러다 기회가 됐는데 캐스팅에 딱 이제훈 배우가 떠올랐고, 제안했을 때 기꺼이 해줘서 너무 고마웠다. 이제훈 배우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도 재밌게 봤더라. 그래서 이종필 감독과도 서로 기본적인 호감이 있어서 잘 됐다 싶었다.
-이번 작업서 본 이제훈의 모습은 어땠나.
▶이제훈은 정말 훌륭하다. 대단한 젊은이다. 지치지 않고 성실하고 너무 노력하는데 그걸 티 내지 않는다. 배려하는 좋은 사람이다. 진짜 멋지다. 현장서 자기관리도 정말 최고였다. 리스펙트다. 밥차가 오면 본인도 먹고 싶을 텐데 안 됐다 싶을 정도로 자기관리를 하더라. 몸을 보면 아시겠지만 그냥 근육을 만든 게 아니지 않나. 아무나 못할 것 같더라.
-이제훈이 청룡영화상에서 구교환에게 직접 러브콜을 보낸 모습이 화제가 됐다.
▶(그렇게 직접 할 줄) 전혀 몰랐다. 깜짝 놀랐는데 뭔가 좋은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교환 씨는 실제로 그게(러브콜이) 영향을 미쳤다고 하더라. 두 젊은이를 보면서 '아름답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무엇보다 구교환 배우에 대한 개인적 팬심이 많았다. '꿈의 제인' 때부터 너무 좋아했어서 저 배우는 꼭 실물 영접을 한번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구교환의 캐릭터 소화력이 호평을 많이 받고 있는데, 현상은 구교환을 만나 더욱 새롭고 매력적인 캐릭터가 됐다.
▶우리가 북한에 있는 사람들을 딱딱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좀 있는데, 현상은 현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지만 저 멀리 어딘가에 낭만적 꿈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세팅했다. 립밤을 바르거나 발포 비타민을 먹는 장면 등 예민하고 아티스트적인 모습이 있지만, 총을 잡고 있는 괴리에 대해 표현하고자 했던 것 같다. (세팅으로) 70%를 드렸고, 30%는 감독과 배우가 완성을 해갔다고 보는 게 맞다. 영화는 일종의 생물과 자식 같은 것이라 (세팅을 바탕으로) 알아서 쑥쑥 크는 것 같다.
<【여름대전: 제작자들】 박은경 대표 편②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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