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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도 현역이고 싶다… 5060이 생각하는 노인은 73세[김기석의 어바웃 新노년]

김기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2.23 18:56

수정 2025.02.23 18:56

요즘 노인은 몇살부터?
노인인구 1000만 시대
스스로 "나는 늙었다" 4% 불과
"가능할 때까지 일하겠다" 의지
현재 법적 노인기준 연령 65세
"단계적으로 상향" 목소리 높아
정년은 이미 구시대 유물
"경제적 측면도 중요하지만
활기찬 삶 위해 일자리 필요"
정년연장·계속고용 등 논의하되 청년층과의 균형 세심히 살펴야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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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늙어봤니? 나는 젊어봤다!" 몇 년 전부터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이 문장은 요즘 50대·60대가 즐겨 쓰는 말이다. 예전엔 '노인'이라 하면 몸이 불편하고 세상 일에 관심 없는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의 60대는 다르다. 스마트폰을 능숙하게 다루고, 여행이나 운동을 즐기며, 심지어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기도 한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예전만큼 자녀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이런 '새로운 노인 세대'를 두고, 일본에선 한때 '신인류'라 불렀다. 최근 한국에서는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 '신노년(新老年)' 등으로 표현된다. 과연 이들은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고, 우리 사회는 이 변화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빠르게 늘어나는 고령인구

23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해 12월 23일 기준으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당시를 기준으로 65세 이상 주민등록 인구는 1024만4550명. 전체 주민등록 인구가 5122만1286명인 것을 고려하면 20% 이상이 65세 이상인 것이다. UN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은 고령사회, 20% 이상은 초고령사회로 분류하고 있다.

초고령사회에 예상보다 빠르게 진입한 것은 기대수명이 늘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기대수명은 83.6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가 중 세 번째로 길다. 일본이 84.5년으로 가장 길고 스위스(83.9년), 한국(83.6년), 호주(83.3년) 순이다. 1위인 일본과 우리의 차이는 0.9년에 불과하다. 최근 50년간 우리 기대수명은 28년이나 늘었다.

사실 초고령사회에 대한 우려는 우리만의 일이 아니다. 대표적인 초고령사회 국가로 일본을 들고 있지만 2023년을 기준으로 OECD 국가 중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나라는 오스트리아, 벨기에, 체코, 독일, 그리스 등 18개에 달한다. OECD 가입국 38개 중 47%가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2023년 말 19%를 넘는 국가도 영국과 폴란드 등 5개에 달해 현재 기준으로는 절반을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우리나라도 고령화 속도가 빠른 국가로 꼽히는 만큼, "어떻게 하면 건강하고 안정된 노년을 맞이하게 할 것인가"가 큰 과제가 되었다.

■건강·경제력 갖춘 '신노년'

그러나 신노년들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실천하고 있다. 실제로 나이 먹었다는 인식을 하지 않는다.

하나금융연구소가 금융자산 1억원 이상 보유한 50~60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현재 50~60대가 생각하는 노인(고령자) 나이는 73세로 나타났다. 법적으로 노인으로 인정하고 있는 65세보다 8살이나 높다. 특히 10년 전의 동일 연령대와 비교해 '외모와 건강이 더 젊어졌다'는 응답은 69%에 달했고, 50대만 따지면 75%가 그렇다고 답했다. 스스로 '나도 이제 늙었다'고 여기는 사람은 불과 4%에 그쳤다.

통계청 자료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확인된다. 50세를 기준으로 '유병기간 제외 기대여명'과 '주관적 건강평가 기대여명' 간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2012년 당시엔 유병기간 제외 기대여명(20.2년)이 주관적 건강평가 기대여명(19.7년)보다 길었다. 그만큼 건강에 대한 자신감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2020년엔 각각 19.9년과 24.0년, 2022년에는 각각 19.6년과 25.1년으로 주관적 건강평가 기대여명이 훨씬 더 크다. 즉 실질적인 건강 기대여명이 20년 안팎인데도, 스스로 느끼는 "난 건강하다"는 기간은 훨씬 길어졌다는 의미다.

이런 흐름 속에서 '노인' 연령을 높여야 한다는 논의도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월 노인연령 조정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준비하겠다고 밝혔고, 최근 '노인연령 전문가 간담회'도 열었다. 대한노인회는 아예 노인 기준 연령을 65세에서 75세로 단계적으로 올릴 것을 제안했다. 하나금융연구원은 "교육-일-은퇴라는 삶의 3단계가 나이와 분리되면서 고령층도 젊은이처럼 적응하고, 즐기고, 새롭게 도전하려는 경향이 짙어졌다"고 분석했다.

■"노인이라 부르지 마라"

제2차 베이비붐 세대는 건강과 경제력에 자신 있는 만큼 계속 일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한국은행이 55~79세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8%가 '가능하다면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유로는 '더 여유로운 삶을 위해서', '건강을 위해서' 등이 많았다. '자식에게 모든 걸 물려줘야 한다'는 인식은 점차 약해지고, '자신의 노후를 위해 저축하거나 하고 싶은 일을 찾겠다'는 태도가 두드러진다.

물론 이 같은 변화가 모든 50~60대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건 아니다. 같은 세대 내에서도 지역, 직업, 소득 수준에 따라 삶이 크게 달라진다.

예컨대 서울에서 퇴직 후, 평생교육원에서 도예를 배우며 작은 전시회까지 연 67세 정모 씨는 "연금이 꽤 나와서 당장 생계 걱정은 없고, 이제부터는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며 살고 싶다"고 말한다. 반면 농어촌이나 영세 자영업에 종사하다 몸이 아프면 곧바로 소득이 끊기고,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짧아 노후 자금 마련이 어려운 경우도 많다.

농사를 짓는 68세 이상혁 씨는 무릎이 아파 일하기 어려운데 공적연금 수령액이 적어 생활이 빠듯하다. "여기(농촌)에서 정년이란 게 따로 없으니, 아프면 그냥 일 못 하고 버는 것도 없죠. 운동도 하고 싶고 취미도 생겼지만 그럴 여유가 없어요." 같은 세대라도 처한 환경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고령화 대책, 일본 사례 참고할 필요

생활의식 역시 변화 중이다. 자녀도 중요하지만 나 역시 중요하다는 판단이 강해졌고, 자기개발에 대한 의지가 높아졌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50대 기준으로 노후를 위해 자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비중은 48.5%로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오히려 '자녀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못 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응답이 51.2%로 높았다.

하나금융연구소가 50~60세대에 은퇴 후 계속 일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더 여유로운 삶을 위해서'라는 답이 32%로 가장 많았고, '건강을 위해서'(30%), '생활비 충당'(24%) 순으로 뒤를 이었다. '자녀에게 더 많은 자산을 물려주기 위해서'라는 답변은 4%에 불과했다.

이런 변화를 반영하려는 정부 노력도 있다. 올해 노인 일자리를 110만 개로 늘리고,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한 '디지털 경로당' 확충 사업 등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아직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다른 국가의 정책을 참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일본 사례가 자주 언급된다.

일본은 2006년부터 기업에 '고령자 고용 기회 확보'를 의무화했고, 정년을 65세로 연장한 뒤에도 계약을 지속해 일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했다. 그 결과 고령층 취업률이 높아지고 연금 재정에도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는 평가다. 다만 일본도 일부 기업은 고령자를 재고용하면서 임금을 크게 깎거나, 비정규직 형태로 전환하는 문제도 있었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나이를 들수록 일자리가 필요하다. 경제적인 측면도 있지만 외롭지 않은 삶을 위해서도 중요하다"며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계속 고용, 정년 연장, 제도 폐지 등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정년 연장이나 제도 폐지는 청년층 일자리, 기업 부담과 직결되므로 사회 전체가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령층을 지원하며 청년층의 고용 안정도 지켜내는 균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뜻이다.

■신노년, 모두에게 희망이 되려면

2차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 연령에 접어들면서, 사회 전체가 '새로운 노인상'에 주목하고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익숙하고, 자녀에게 기대기보다는 스스로 삶의 기쁨을 찾아 나선다. 그만큼 자기계발과 취미생활, 재취업과 창업에 도전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들이 모두 활기찬 노년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연금과 자산이 부족해 생계 위기에 놓인 이들도 많다. 결국 초고령사회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고령층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정년 연장'이나 '계속 고용' 등 제도를 세심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 또 청년 세대의 고용 안정, 기업 인건비 부담 완화 등 여러 문제를 함께 풀어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전문가는 "정년은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 됐다"며 "우리 사회가 얼마나 빨리 고령화에 적응하느냐에 따라, 은퇴 후에도 건강하고 활발한 '신노년'의 삶이 얼마든지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너 늙어봤니? 나는 젊어봤다"는 말이 "늙어도 얼마든지 젊게 살 수 있다"는 희망으로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kkskim@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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