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작품 '살짜기 옵서예' 내년에 다시 무대에 올릴 것
"'사랑은 비를 타고'(이하 사비타)는 첫 자식 같은 작품이에요. 한국 창작뮤지컬로는 처음 해외에 판권이 수출됐으니 기특한 자식이죠. '청이야기'는 음악이 세계적이라고 자부해요. 앞으로 세계시장에 내보낼 작품이 수두룩합니다."
지난 2일 만난 초이스엔터테인먼트 최귀섭 대표(48·사진)는 신이 나서 말했다. 그는 올해 초연 20주년을 맞은 뮤지컬 '사비타'의 작곡가이기도 하다. '사비타' 20주년에 맞춰 회사를 설립했고 본격적으로 뮤지컬 기획·제작 사업에 나선다. 작품의 기본 전제는 모두 '창작'이다.
"해외 라이선스 작품은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가져오는 시대는 지났어요. 우리 것으로 수출해야죠. 실력을 충분히 갖췄지 않습니까."
최귀섭 대표는 "결국 좋은 콘텐츠를 많이 보유하고 있어야 승자가 된다"고 했다.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해외 작품을 들여오는 게 나쁜 건 아니에요. 좋은 작품을 들여왔을 때 국내 뮤지컬 시장에 발생하는 상승작용이 있죠. 그런데 그 취지가 변질되는 경우가 많아요. 로열티 지불하랴, 스타 배우들 높은 개런티 맞추랴 시장이 왜곡되는 거죠."
최 대표의 머릿속에는 세계시장을 염두에 두고 구상 중인 작품이 가득하다. 기존 레퍼토리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은 기본이고 아버지가 남긴 곡을 모티브로 뮤지컬을 제작할 계획도 있다. "영화사와 저작권 문제를 논의 중이라 구체적인 얘기를 하기는 어렵다"면서 "디즈니 애니메이션처럼 드라마가 탄탄하면서도 친숙한 음악으로 어른, 아이 모두에게 감동을 주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최 대표의 '창작 DNA'는 집안 내력에서 기인한다. 그의 아버지는 국내 본격 첫 창작뮤지컬로 꼽히는 '살짜기 옵서예'의 작곡가인 최창권(1934~2008)이다. 고전소설 '배비장전'을 모티브로 한 이 작품의 주인공 '애랑' 역은 당시 인기 여가수 패티김이 연기했다. '살짜기 옵서예'가 50주년을 맞는 내년에 이 작품을 다시 무대에 올릴 계획이다. 또 2009년 국립극장에서 초연한 '청이야기'도 업그레이드해서 세계시장에 내놓을 생각이다.
그의 형 최호섭은 지금도 리메이크되며 많은 가수들에게 불리고 있는 명곡 '세월이 가면'을 부른 가수다. 그 곡을 최 대표가 썼다. 최 대표는 원준희의 '사랑은 유리 같은 것', 변진섭의 '커가는 내 모습' 등 귀에 익은 대중가요를 다수 작곡했다. '사비타'가 지금까지 사랑받는 힘도 '오래가는' 음악 덕분이다.
"예전에 가요를 작곡할 때도 외국 팝처럼 새로운 세대가 들어도 좋은 곡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늘 했어요. '사비타'도 그랬죠. 초연 때 음악이 좋다는 평을 많이 받았어요."
'사비타'는 이듬해 제2회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음악작곡상, 남우주연상 등 4개 부문을 휩쓸었다. 같은 해 초연한 '명성황후'가 대형 창작뮤지컬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면 '사비타'는 '살롱 뮤지컬'의 시작을 알리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뮤지컬 1세대로 불리는 남경읍, 남경주, 최정원의 초연 이후 꾸준히 무대에 오르며 박건형, 오만석, 윤공주 등 뮤지컬 스타의 등용문으로 불렸다.
그런 '사비타'였지만 저작권 문제로 마음고생도 많았다. 잘해보자는 마음으로 뭉쳤던 창작자와 제작자 사이의 신뢰가 어느 순간 깨지기 시작했다. 법정 싸움까지 갔고 여섯 번에 걸친 소송에서 결국 이겼지만 작품 제목에 대해서는 법적 제한을 둘 수 없다는 판결을 받았다. 같은 제목의 다른 공연 때문에 피해를 보기도 했지만 원작의 힘, 관객의 눈을 믿었다.
"뭐가 원작인지 많은 분이 헷갈려 하셨죠. 지금은 판례도 생겨서 법적 해석을 달리할 수 있는 여지도 있지만 소송을 내고 싶지는 않았어요. 공연계가 다 어렵잖아요. 작품으로 승부를 걸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이번 20주년 기념 공연은 원작을 그대로 살리되 세련된 편곡으로 작품을 가다듬었다. 최 대표는 '사비타'로 일본을 넘어 아시아 시장 전체를 바라보고 있다. 이르면 올해 말에는 중국 버전의 '사비타'가 현지 무대에 오른다. "'형제애'라는 주제도 그렇고, 작품이 기동성이 있어서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기 좋은 작품이에요. 국내에서는 마음 같아선 30주년, 40주년 이상으로 오픈런하고 싶어요. 하하."
dalee@fnnews.com 이다해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