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A씨가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은 것은 지난해 1월이다. 당시 서른여덟 나이의 A씨는 태어날 때부터 난치성 뇌전증, 좌측편마비 및 지적장애 등을 겪는 바람에 평생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았다.
안타깝게도 항암치료마저 순탄치 않았다. 혈소판 감소로 치료가 늦어졌고 그로 인한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 딸을 지켜보는 어머니 B씨 또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다 B씨는 수면제 10정을 A씨에게 건넸다. 불면증 때문에 복용하던 약이었다. A씨는 약을 먹은 후 잠이 들었고 B씨는 베개와 수건으로 딸의 얼굴을 눌렀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이다.
딸을 짓누른 어머니의 상태도 심각했다. 범행 나흘 전 동네 의원에서 중증도의 우울증 판정을 받았으며 극도의 불안과 절망감으로 대안적 사고가 불가능한데다 의사 결정 능력이 미약한 심신미약 상태였던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법원은 사물 변별이나 의사 결정 능력이 미약한 상태는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딸이 숨진 뒤 유서를 쓰고 극단 선택을 시도한데다 경찰에서 살해 방법을 고심했다고 진술한 것이 그같은 판단의 근거였다.
B씨는 경찰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는데 잠들었을 때 죽게 하는 게 고통이 가장 덜할 것 같아 고심 끝에 그렇게 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법원은 살인 혐의를 적용하고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아무리 어머니라도 딸의 생명을 처분하거나 결정할 권리는 없다"면서도 "피해자의 장애 정도를 볼 때 통상의 자녀 양육보다 더 많은 희생과 노력을 했을 것이고 범행 전까지 38년동안 딸을 돌보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장애인 및 그 가족에 대한 국가의 보호와 지원 부족 또한 사건 발생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여 이 사건을 오로지 피고인의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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