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한병찬 기자 = "러브버그가 저를 쫓아오는 줄 알았어요."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에서 만난 박형규씨(29)가 팔을 저으며 말했다. 그는 "얼굴이나 몸에 달라붙어 그때마다 깜짝 놀란다"며 "불쾌하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서울 서북부를 중심으로 출몰했던 러브버그가 올해는 관악구, 강남구 등 서울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암수가 쌍으로 다녀 러브버그라고 불리는 붉은등우단털파리가 어쩌다 한강 이남 심지어 경기도와 인천까지 퍼졌을까. 전문가들은 크게 3가지 가설을 제시했다.
◇ "서식지·먹이경쟁에 확산…외국서 들어온 외래 유입종"
먼저 지난해 발생한 개체들이 경쟁에 의해 서식지를 확산했을 가능성이다.
박선재 국립생물자원관 연구관은 "한정된 공간에 개체가 많이 있으면 서식지·먹이 경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며 "러브버그처럼 대발생하는 종은 성충이 주변으로 자연스럽게 확장해 산란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는 외국에서 들어왔을 가능성이다. 러브버그가 지난해부터 본격 발견된 것은 최근 외국에서 유입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민원 접수 적극성이다. 러브버그는 지난해에도 서울 서북부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서식했지만 올해는 시민들이 러브버그를 발견하면 민원을 적극 제기한다는 것이다.
러브버그는 지난해 12월 우리나라에서 미기록종으로 등록됐다. 박 연구관은 "러브버그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한국 토종 계피우단털파리와 다른 종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며 "우리나라에서 새로 발견된 종"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러브버그가 외국에서 왔다면 인천 항만을 통해 유입됐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 "방충망에 따닥따닥 징그러워" 서울 전역에 시민 불편 속출
은평구에 따르면 13~22일 러브버그 민원이 1900여건 접수됐다. 마포구·동대문구·영등포구 등에도 관련 민원이 다수 들어왔다.
시민들은 날아드는 러브버그가 불편하다고 입을 모았다.
불광동에 전셋집 매물을 보러 갔다는 임모씨(25)는 "방충망에 붙어있는 러브버그 사체를 보고 기절할 뻔했다"며 "방충망이나 물구멍으로 들어와 옷 위에 앉는데 끔찍했다"고 말했다.
고양시에 사는 주부 A씨(47)는 "요즘 러브버그가 한두 마리씩 집에서 발견된다"며 "작년에 은평구에 러브버그가 창궐했다고 했을 때 남의 일이라 생각했는데 올해는 내 일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역 카페에서 만난 유모씨(28)도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먹다가 창문에 붙어있는 러브버그를 보고 입맛이 뚝 떨어졌다"며 "무당벌레처럼 귀엽지도 않고 징그럽다"고 고개를 저었다.
쏟아지는 민원에 서대문구·영등포구·마포구 등은 홈페이지(누리집)와 블로그에 관련 정보와 대처법을 게시하기도 했다. 대처법에는 △물기를 싫어하니 창문에 물 뿌리기 △살충제에 약하다 △방충망 설치 등이 적혀 있다.
서울시내 자치구의 한 관계자는 "오전·오후 한번씩 순찰하며 집중 출몰 지역에 연무기를 뿌리며 방역한다"고 말했다.
◇ "무분별한 화학적 방제 대신 물리적 방제를"
러브버그는 사람에게 직접 해를 끼치지 않고 인간을 물지 않는다. 독성이나 질병도 없다.
오히려 익충에 가깝다. 박 연구관은 "러브버그 애벌레는 낙엽이나 유기물을 먹이로 하면서 지렁이처럼 토양을 비옥하게 해준다"며 "성체는 꽃에 수분을 공급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특유의 생김새가 혐오감을 주고 달라붙는 특성이 있다. 이에 박 연구관은 "화학적 방제를 남발하면 러브버그를 잡아먹는 거미까지 함께 죽어 다른 종이 대발생할 수 있다"며 "화학적 방제가 일부 불가피하다 해도 불빛에 모이는 습성을 이용해 유인하거나 끈끈이 트랩으로 잡는 물리적 방제를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곤충생리학 및 분자생물학을 연구하는 윤준선 전북대 농축산식품융합학과 교수도 "지구온난화가 간접적으로나마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며 "러브버그를 없애는 것보다 자연적으로 천적이 더 생기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일반적인 살충제로도 러브버그 방제가 가능하다"면서도 "없애기보다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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