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은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고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영자에게 1년 이상 징역 등의 처벌을 가하도록 한 것이 골자다. 법의 취지는 모르는 바가 아니다. 국내 산재 사망사고는 20여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상위였다. 만연된 안전 불감증, 미흡했던 사전 예방조치가 사고 원인이었다.
근로자가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드는 것은 사업주와 정부의 의무다. 하지만 더 센 경영자 처벌에만 초점을 맞춘 재해법은 사고를 줄이기는커녕 혼란만 부추겼다. 실제 법이 시행된 지난해 50인 이상 사업장의 중대재해 사망자는 더 늘었다. 올 들어서도 비슷하다. 상반기 건설현장 사망자는 지난해 동기 대비 10명이 더 많다. 중대재해법 이후 업계는 안전 전담조직을 신설하고 재해예측 관리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대응책을 쏟아냈는데도 이런 결과였다. 처벌은 피하고 보자며 매뉴얼에 나온 조치에만 매달리는 기업이 늘면서 컨설팅하는 로펌만 득을 봤다.
법의 실효성을 따져 모호한 조항들을 대거 손질하는 것부터 먼저 할 일이라고 본다. 이대로 내년부터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법 적용 대상이 될 경우 업계 주장대로 문 닫는 기업이 속출할 수 있다. 영세사업장의 경우 대표가 구속되면 이를 수습할 수가 없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50인 미만 사업장 중 41%가 내년 1월까지 중대재해법 준비가 불가능한 상태라고 한다. 50인 이상 사업장도 34%의 경우 법을 못 지키는 실정이다. 법은 있는데 취지도 못 살리고, 잘 지켜지지도 않으면서 적용대상만 늘린다면 누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겠는가. 우리 사회 전반에 안전의식을 높이는 것도 절실하지만 법 시행에 1~2년 유예기간을 둬서 숨통을 터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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