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사설

[fn사설] 전기요금 포퓰리즘 못벗고 자구책은 시늉만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1.08 18:30

수정 2023.11.08 18:30

9일부터 산업용 전기 요금만 인상
적자와 부채 얼마나 해소할지 의문
김동철 한국전력 사장이 8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경영 위기 극복을 위한 자구책을 발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동철 한국전력 사장이 8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경영 위기 극복을 위한 자구책을 발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와 한국전력이 9일부터 산업용 전기요금을 킬로와트시(㎾h)당 평균 10.6원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대신 가정용, 소상공인, 중소기업의 전기요금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 산업용만 올리고 나머지는 동결한 것은 내년 총선을 앞둔 전략적 결정으로 볼 수 있다.

치솟는 물가에 서민들이 내야 하는 에너지 요금까지 오르면 정부에 대한 불만이 커질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급등한 유가에도 전기요금을 제대로 올리지 못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윤석열 정부 역시 다를 것 없다.
천문학적인 한전의 적자에도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민심 이반과 표를 의식한 정치논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원가도 안 되는 값에 전기를 팔아 눈덩이처럼 불어난 한전의 부채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올 상반기 요금을 ㎾h당 21.1원 인상했지만 7조2000억원 적자를 냈다. 2021년 2·4분기 이후 누적된 적자가 47조5000억원에 이른다. 총부채는 200조원을 넘어섰다. 불안한 중동정세를 보면 하반기에도 적자 가능성이 크다.

가스공사는 더 심각하다. 지난해 부채비율이 500%로 한전보다 더 높다. 올해 상반기 민수용 도시가스 미수금은 12조원을 넘었다.

산업용(을) 전기요금 대상은 광업·제조업 등 주로 대기업이다. 전력사용량은 전체의 절반(48.9%)을 차지한다. 정부와 한전으로서는 산업용 요금 선별 인상은 절충안이다. 미국 정부가 한국의 저렴한 전기요금이 사실상 정부 보조금에 해당한다며 한국산 철강제품에 상계관세를 부과하기로 판정을 한 것도 고려했을 것이다.

선별 인상이라도 어느 정도 한전 재무구조 개선에 보탬은 될 수 있겠지만 역마진 구조를 개선하는 데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많다. 정부가 이번에도 시장원리를 저버렸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원가를 가격 책정에 반영하는 것이 당연하다. 일반 가정의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아 가계부담을 당장은 덜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공기업의 부실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된다.

한전은 자구책도 함께 발표했다. 서울 노원구 인재개발원 부지 매각, 본사 조직 20% 축소, 자회사 한전KDN 지분 20% 민간 매각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역시 시늉만 냈다는 평가다. 한전은 빚더미 위에 앉아서도 과도한 성과급과 사내복지로 방만경영이란 비난을 끊임없이 받았던 기업이다. 내부 개혁과 쇄신은 매번 미진했다. 이번에는 획기적 자구책을 기대했지만 눈에 확 띄는 것은 없다. 뼈를 깎는 고통분담이 동반되지 않은 전기료 인상은 국민의 동의를 받을 수 없다.


이 정도의 요금인상과 자구책으로 한전의 적자와 부채가 얼마나 해소될 수 있을지 지켜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포퓰리즘에 예속된 요금 결정체계로는 한전의 정상화는 요원하다.
전기요금 결정을 정치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기구에 맡기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