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남편의 도시락을 싸주는 여성은 ‘시종’이라는 주장이 일부 여성전용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이들은 이런 종류의 콘텐츠를 올리는 ‘주부 유튜버’를 향해 ‘남편 도시락 싸주면 노예’ ‘가부장제 체제 선전에 앞장선다’며 온갖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13일 온라인커뮤니티에는 ‘남편 점심 만들기 유튜브, 뭐가 문제냐면요’라는 제목의 글이 확산하고 있다. 이 글은 지난 8월 독자 A씨가 한 인터넷 신문에 기고한 글이다.
A씨는 글에서 남편 점심 도시락을 싸주는 콘텐츠를 게재하는 한 유튜버를 언급하며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행동이 다른 이에게 주는 파급력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A씨는 “이 힘을 잘 들여다보면 ‘내조하는 여성’으로서의 가치를 치켜세우는 모순이 있다”며 “‘현모양처’ ‘참된 여성’이라는 말이 칭찬 댓글로 달릴 때마다 여성의 요리가 바깥일 하는 남편을 보조하는 역할로 고정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부부의 사적인 사랑도 사회구조 안에 있다. 아침 7시에 집을 나서는 남편에 맞춰 새벽 5시에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고 각종 제철 음식으로 채운 도시락은 사실 익히 봐왔던 ‘가부장제’의 단면”이라며 “남성은 일과 존중, 여성은 요리와 정성이라는 단어로 애정을 표현하는 게 이상적인 부부 모델로 굳어진다면 사람들의 인식 속에 가부장제가 회귀할 것”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천사 혹은 참된 아내라는 말이 칭찬이 되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이 채널을 보고 살뜰히 내조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게 되지 않을까”라며 “요리 실력에 대한 감탄이 좋은 아내 프레임에 여성을 가두고 내조하지 못하는 여성에게 죄의식을 주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라고 주장했다.
A씨는 “맞벌이 여성의 경우 남편의 도시락을 싸주는 행위가 더더욱 문제”라며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여성 노동권의 표어가 되는 현실에서 맞벌이 여성 배우자의 도시락이란 초과노동의 초과노동”이라고 날을 세웠다.
A씨는 “결국 여성의 밥상을 받는 남성이 최고라는 말, 결혼해서 ‘큰아기·큰아들’이 되는 남성은 언제나 돌봄과 가정일에 무지해도 된다는 시그널이 유튜브를 통해 침투하게 된다”며 “여성의 요리를 다시 가정 안에, 남편을 보조하는 역할로 축소하는 흐름에 더더욱 동의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A씨의 글이 확산하자 일부 온라인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언급된 유튜버를 향한 비난성 발언이 끝없이 이어졌다. “스스로 노예를 자처한다” “혼자서 시종하고 살아라” 등의 비판이 나왔다.
반면 “강제로 시키는 것 아닌, 사랑에서 비롯된 행동이 왜 문제냐” “받는 것보다 주는 사랑이 더 행복할 때가 있죠” “평범한 일산의 행복조차 욕먹어야 하냐” 등의 반응도 나왔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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