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SF 영화, 오는 28일 국내 전세계 최초 개봉


[파이낸셜뉴스]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에 대한 외신 반응이 속속 올라와 이목을 끈다.
‘미키 17’은 지난 14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최초 공개된 후 지난 15일 제75회 독일 베를린영화제에서도 공개됐다. 주로 대중적인 장르영화를 선보이는 스페셜갈라 부문에 초청된 이 작품은 1억5000만달러(2165억원)가 투입된 블랙코미디 성격을 띈 SF물로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 7'이 원작이다. 17일에는 국내 언론에 첫 공개됐다.
'미키 17', '기생충'이후 신작이라 기대감 높은 탓? '옥자'보다 낮아
영화는 2050년대를 배경으로 죽으면 다시 생체 프린팅되는 미키가 17번째 죽음의 위기를 겪던 중 그가 죽은 줄 알고 미키18이 프린트되면서 벌어지는 예측불허의 이야기를 그린다.
봉준호 감독은 앞서 지난 1월 패틴슨과 함께한 내한 기자회견에서 "주인공은 극복할 수 없는 경제적 위기에 직면한 나머지 자신의 몸을 실험용 쥐처럼 여겨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다"며 "빈곤이라는 상황 앞에 한없이 무기력한 노동자 계층을 대변하는 캐릭터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 이야기"라고 말했다.
영화에 대한 반응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이지만, '기생충'의 파급력이 하도 컸기에 아쉽다는 반응도 눈에 띈다.
17일 비평사이트 로튼토마토에는 28개 외신·평단이 매긴 ‘미키 17’ 평점이 올라왔는데 신선도는 86%(100% 만점). 역대 봉 감독 장편 8편 중 가장 낮다. 그동안 최저점은 87%를 받은 ‘옥자’, 최고점은 99%를 기록한 ‘기생충’이다.
“노동 계급을 위한 SF”
호평을 낸 외신 반응을 살펴보면, 영국 매체 인디펜던트는 메타크리틱을 통해 "노동 계급을 위한 SF"이자 "한 남자가 자신이 행복해져도 괜찮다는 사실을 배워가는 이야기"라고 평했다. 또 "냉혹하면서도 묘하게 삶을 긍정하는 반(反)자본주의 SF 영화"라고 부연했다.
미국 영화 매체 인디와이어는 '설국열차'(2013)와 '옥자'(2017)의 장점을 합친 작품이라며 봉 감독이 현재까지 내놓은 영어 영화 중 가장 뛰어나다고 극찬했다. 인디와이어는 "단순히 봉준호가 자본주의를 증오한다는 걸 보여주는 '또 하나'의 걸작이 아니"라며 "봉준호가 얼마나 인간을 사랑하는지 보여주는 '첫 번째' 영화"라고 강조했다.


17일 직접 확인한 '미키 17'은 죽는 게 직업이라 방사능 노출, 외계 바이러스 백신 개발을 위한 생체 실험 등과 같은 온갖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는 미키가 기존의 수동적인 삶의 태도를 버리고, 좀 더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전작 '기생충'과 달리 따뜻하고 희망적이었다.
미키(로버트 패틴슨)는 우리시대 '흙수저 청춘'를 떠올리게 한다. 너무 착해서 안쓰럽고, 답답하다고 느낄 정도다. 도입부는 미키의 성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친구 티모(스티브 연)는 임무 중 얼음 골짜기에 떨어져 죽기 직전인 미키를 발견하고도 그를 살릴 생각은 하지 않고 무기만 챙긴다. 어차피 다시 프린트될 것이니까 괜찮지 않냐는 반응인데, 와중에 "죽는 기분이 어떠냐"고 묻고, "잘 죽고 내일 만나자"고 인사한다.
미키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도 그냥 묵묵히 받아들일 뿐,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은 친구나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무신경한 태도에 단 한번도 싫은 소리를 하지 않고, 그저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낼 뿐이다.
너무나 비인간적이고 혹독한 작업 환경에 내몰린 미키의 모습은 그동안 뉴스 사회면을 장식한 청년 노동자의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극중에서야 미키라는 동일 인물이 계속 살아나지만, 계속 살아난 미키는 늘 대기 중인 대체 인력과 다름 아니다.
초반부 미키를 둘러싼 주변 환경과 그런 그의 고통에 무심한 사람들의 모습도 우리사회의 현실과 겹쳐진다. 하지만 봉 감독 특유의 유머 감각 덕에 심각하고 진지한 이러한 상황을 허허실실 웃으면서 지켜보게 된다.
앞서 영국 런던에서 열린 '미키 17' 첫 시사회 후 영화 '빅쇼트'와 '돈 룩 업' 등의 각본을 쓰고 연출한 애덤 매케이 감독은 "현재 우리가 속해 있는 자본주의의 지옥도 무대를 완벽하게 그린 우화"라고 극찬했다.


미국의 영화예매사이트 판당고의 한 임원은 이 영화를 "절대적인 반란"이라고 표현하면서 영화의 전반부가 특히 "엄청나다"고 평했다.
미키 역 로버트 패틴슨 연기 발군..봉 감독 최초 멜로도 담겨
반면 '기생충'과 비교하면 기대 이하라는 반응도 나온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미키 17'은 시각적으로 화려하며, 강렬한 감정적 순간과 공포 요소가 포함돼 있다"면서도 "이는 초반부에서 가장 두드러지고 이후 이야기가 감정적으로 전개되면서 힘이 빠진다"고 평했다.
할리우드리포터는 "봉준호의 전작들처럼 과감한 전개를 이어가지만, 아쉽게도 주제적 일관성이 모호하다"며 "어딘가 가벼운 느낌을 주는데, 아마도 이 영화의 개봉 일정이 1년 동안 계속 연기된 이유를 설명해줄지도 모른다"고 다소 박한 평가를 내놨다.
영화는 죽음의 위기를 겪고 기지로 돌아온 미키17이 그 사이 프린팅 된 미키18과 마주하면서 이야기가 다소 모호해지는 국면이 있다. 미키17과 미키18의 갈등은 미키의 능력있는 여자친구 나샤(나오미 애키)와 엮이면서 세 남녀의 '스리섬' 아니냐는 지적이 해외에서 나오기도 했는데, 이는 가벼운 농담 정도로 보면 된다.
이 영화에서 나샤는 알고 보면 꽤 비중있는 캐릭터다. 나샤는 미키를 싸구려 소모품 취급하는 독재적인 지도자 캐릭터 먀살 부부와 대척점에 있다. 우리사회가 좀더 나아지면 좋겠다는 감독의 바람이 투영된 캐릭터이기도 하다.
영화 속 외계생명체 캐릭터는 미야자키 하야오 영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나오는 오무를 연상시킨다. 캐릭터 디자인에 대한 호불호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제법 귀엽다. 이 생명체와 우주 정복을 꿈꾸는 인간 간 대립은 이 영화의 스펙터클을 책임지는 또 하나의 볼거리면서, 공존의 메시지도 던진다. 마샬을 향한 나샤의 "누구한테 외계인이래, 우리가 외계인인데"라는 대사에서는 인간 위주의 사고 방식에 경종도 울린다.

'미키 17'은 기존 할리우드 SF영화와 전혀 다른 이야기 전개로 봉준호 영화의 독특함을 드러낸다. 자본주의가 인간성을 앗아간 미래를 심각하지 않으면서도 유머러스하게 접근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1인 2역에 나선 로버트 패틴슨의 목소리 톤은 이 영화의 톤앤매너를 대변한다. 더 랩(The WRAP)은 "로버트 패틴슨은 봉준호 감독의 미친 SF 우화 속에서 코미디의 금메달급 연기를 보여준다”고 호평했다.
봉감독은 앞서 데뷔 후 처음으로 '미키 17'에서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뤘다고 했는데. 과장이 아니다. 늘 그렇듯 잔인한 세상에서 가련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이 있으니 희망의 빛도 내리쬔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는 흙수저 청년을 위한 응원가처럼 다가온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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