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아이슬란드 여행 6일 차. 섬 동부에서 북부쪽으로 이동한다.

아무리 우리 렌트카가 4륜구동 지프라도 빙판에 경사도 무척 가팔라서 그대로 통과하다가 잘못하다 미끄러질지도 모르는 상황. 고민고민하다가 결국 산을 다시 내려가 다른 길로 돌아가기로 했다.
겨울의 아이슬란드에 오면 이렇게 갑자기 갈수 없게 된 도로를 만나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4월이었지만 아직도 산 위에는 눈이 안 녹은 곳이 많았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산을 넘을 수 있는데... 너무 아쉬워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아쿠레이리이다. 수도인 레이캬비크에 이어 아이슬란드의 제 2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섬을 시계로 생각하면 12시 방향에 있는데 어제까지 머물렀던 동쪽의 에이일스타디르에서 약 3시간 거리이다.
에이일스타디르에서 아쿠레이리까지 3시간 걸린다
우리의 아이슬란드 여행 계획을 카우치서핑에 올렸더니 감사하게도 아쿠레이리에 사는 친구가 우리를 초대해주었다. 친구를 만날 생각에 마음이 마구 설레었다. 아이슬란드의 어마어마한 물가에 며칠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겠지만 그것보다도 바쁘게 여행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좋았고 아이슬란드에 대해 현지 친구에게 많은 것을 물어보고 싶었다.
어젯밤 새벽에 외진 곳으로 차를 몰고가서 한참을 하늘을 바라보고 기다렸는데 오로라를 볼 수 없었다. 친구에게 오로라에 대해서도 물어봐야겠다. 또 유명한 관광지가 아닌 친구가 좋아하는 장소를 알려달라고 해서 찾아가 보고싶다. 여행지에서 현지 친구가 생기면 좋은 것들이 너무너무 많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친구네 집으로 향한다.
회색 구름으로 꾸물꾸물해진 하늘아래 아쿠레이리에 도착했다. 가장 눈에 띈 것이 길가의 빨간 신호등. 하트모양으로 켜진다! 와, 정말 쇼킹하다. 왜 우리는 이런 생각을 못했지? 너무너무 예쁘다. 신호등 불이 동그랗기만 할 필요가 뭐있나.

가는 곳 마다 빨간 하트를 보고는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보통 신호등을 건널 때 빨간불이 켜지면 좀 답답하고 기분이 별로인데 이 하트를 보고 있으면 빨간불이어도 덜 답답하고 심장을 연상하면서 더 주의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쿠레이리가 여러모로 마음에 든다.
친구네 집에 가기 전 핑크색 돼지가 상징인 보너스라는 마트에 들렀다. 살인적 물가의 아이슬란드에서 그나마 식료품 등을 가성비 있게 살 수 있는 곳이다.
높은 물가로 외식이 어려워 식료품 구입이 중요하다
친구와 함께 먹기 위해 고기와 채소 그리고 과일을 잔뜩 샀다. 친구의 집에 도착하니 은색 기아 소렌토 차량이 집 앞에 서있다. 메세지로 대화를 나눌 때 한국차가 있다고 했는데 친구의 차인 모양이다.
친구의 차 기아쏘렌토 아이슬랜드 험로를 다니기에 좋은 선택이었나보다.
친구의 집은 2층 주택이었는데 담도 없고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 안전한 동네 같아 보이고 좋았다.
더부룩한 턱수염에 거의 2미터가 되어 보이는 장신인 비기는 친절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우리가 묵을 방은 커다란 더블배드에 깨끗하고 좋은 환경이었다. 비기는 주로 재택근무를 한다고 한다. 인사후 비기는 다시 일을 하러 방에 들어가고 우리는 저녁을 준비했다. 상추를 닮은 채소를 쌈채소 삼고 돼지고기를 굽는다. 쌀이 없는 것이 조금 아쉽지만 튀르키예 메르신에서 받은 인스턴트 떡국과 한국에서 가져온 고추장, 캔김치까지 한식 한상차림이다.
비기는 여행을 무척 좋아하고 경험도 무척 많았다. 한국에는 아직 안가봤지만 2020년 일본에 갔다가 코로나로 돌아와야 했다고 한다.

한국에 대해 무척 궁금해하며 이것저것 많은 것을 물어보았다. 식사하며 맥주를 마시다가 한국에서는 건배를 할 때 뭐라고 하냐고 물어봐서 "짠!"이라고 대답해주었다. 건배사가 너무 많아서 가장 쉬운 것으로 골라 알려주었다.
서양사람들이 매운 것을 못 먹는다는 것은 선입견일 뿐이다. 물론 잘 못 먹는 사람도 있지만 의외로 매운 것을 좋아하고 잘 먹는 사람들도 많다. 비기도 매운 맛을 좋아해서 고추장을 맛보고는 무척 좋아했다.
고기를 채소에 싸먹는 것을 알려주니 계속 그렇게 먹는다. 절대 한입에 다 넣어야한다고 제대로 가르쳐주었다. 즐겁게 식사를 하며 아이슬란드에 대해서 여러가지를 묻고 들을 수 있었는데 여기도 과거 가난한 나라였다가 2차대전 이후 경제발전을 이루었다고 한다. 한국과 비슷한 것이 흥미로왔다.
아이슬란드 전통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비기가 상어고기를 냉장고에서 꺼내왔다. 딱 보기에 하얀 참치살덩이 같아보이는 것이 시큼한 냄새가 나는 걸 보니 삭혔나보다. 하나 쿡 찍어 입에 쏙 넣은 탄이랑 달리 나는 냄새부터 맡아보고 먹으려 입을 벌리다가 멈칫. "어우, 나는 쉽게 못 먹겠는데?" 하며 웃었다. 탄에게 확인해본다. "괜찮아?" "응~" 탄이 잘 먹고 있는 것을 보고 용기를 내어 한입에 넣었다. 맛있다기보다는 먹을 수 있을 정도인 것 같다.

아이슬란드에서도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한다. 좋은 경험이었다. 상어도 먹어보고ㅎㅎ
저녁식사 후 비기의 소장품을 구경했다. 어릴 때 삼촌과 새알을 찾아다니는 것이 취미였다고 한다. 멋진 투명케이스에 크기와 색이 다른 여러가지 새알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다 직접 주워온 것이라고 한다. 제일 큰 것이 백조알이라고 하는 얘기에 깜짝 놀라며 "오 나 백조알 처음 봐요!"하자 비기가 갑자기 케이스를 열고 백조알을 꺼내어 내손 위에 올려놓는다.
살짝 당황했지만 깨질까 조심조심 두 손으로 알을 받아 보았는데 달걀의 네다섯배는 되보이는 크기에 무척 단단한 느낌이다. 신기했다. 아이슬란드라서 가능한 취미일 것 같았다. 알 컬렉션이라니.
그렇게 비기네서 3일간 머물면서 그 근처를 여기저기 마음 편히 돌아다니기로 했다. 탄이는 목감기가 빨리 낫지를 않아 힘들어하면서도 여행을 하기 위해 애를 썼다.
다음날은 날씨가 맑아 동네 근처를 드라이브하러 나왔다. 어딜 가나 처음 보는 자연의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삼각형으로 흘러나온 용암이 굳어진 듯한 높은 산맥이 줄지어 있는 모습을 보고 마치 검은 피라미드가 늘어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어젯밤 비기가 해준 이야기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다니면서 왜 이렇게 나무가 없다 했는데 역시나 아이슬란드 전체에 나무가 있는 지역이 거의 없다고 한다. 동물들도 여우와 새들이 조금 있을뿐이라 예전에 유럽에서 순록을 데려와 풀어놓고 길렀는데 혹독한 기후에 서쪽에는 다 죽어버리고 동쪽에 조금 남아있다고 한다.
겨울에 얼마나 추운지 경험해보지 않아 잘은 모르겠지만 맑은 물도 이렇게 많고 넓은 땅에 나무와 동물이 거의 없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길을 가다가 일차로밖에 없는 터널을 만났다. 반대편에서 차가 오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중간중간에 잠깐 옆에 댈 수 있는 조금 넓은 곳을 찾아 비키면 된다. 그러니 속도를 절대 높이지 않고 조심조심 가야한다. 워낙 큰 땅에 적은 수의 사람이 살다보니 도로도 일차로인 경우가 많아 한쪽이 지나가기를 기다린 후 가야하는 길도 자주 만난다.


확실히 북쪽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많은 관광객이 레이캬비크를 중심으로 남서쪽에 주로 다녀서 그런가보다. 덕분에 우리는 한적한 풍경을 여유있게 보며 다닐 수 있었다. 북쪽 바다를 볼 수 있는 쉼터에 멈춰서서 북극이 있을 곳을 쳐다보기도 하고 절벽에서 바다로 떨어지는 폭포를 구경하기도 하고 마음 가는대로 다니는 것이 참 좋았다.
비기네 집에 들어가기 전 다시 마트를 잠시 들렀는데 한 구석에 맥주를 무지 싸게 파는 것 같아 놀라서 가보니 논알콜 맥주라고 한다. 맥주는 정부가 운영하는 특별한 가게에서만 비싼값에 판다고.
비기에게 오로라에 대해 물어보니 오로라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페이스북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그리고 앱도 하나 알려줬는데 매일매일 아이슬란드 지역별로 오로라지수가 나오는 앱이어서 오로라헌터들이 반드시 깔고 지수가 높은 날을 확인하고 나온다고 한다.
우리도 페북도 가보고 앱도 깔아두었다. 마침 오로라지수가 조금 높은 KP 4가 떴다. 방해안되게 조용히 새벽 1시에 나가보았지만 그 시각에도 하늘은 완전히 까매지지 않았고 아쉽게도 오로라는 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여러번 시도를 하는 것이 나중에 후회가 없을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어두운 곳을 찾아 도시에서 멀리 벗어난 곳까지 갔던 것이 여러차례인데 모두 실패했다. 가기전에 볼 수 있을까?
궂은 날씨에 도착한 온천 '지오씨'...따뜻한 온천욕을 할 수 있겠지?
일어나보니 눈보라가 휘날린다. 비오는 날은 자주 있었는데 눈이 내리는 것은 처음이다. 오늘은 아쿠레이리에서 북쪽으로 한시간거리의 지오씨(Geosea)에 왔다. 남부의 블루라군이 온천 관광지로 유명한데 인당 14만원이 넘는 입장료가 너무 부담이 되어 대신 이곳을 찾아왔다. 넓은 주차장에 차가 몇대 없다. 이곳의 입장료는 약 5만7000원. 알뜰한 탄이가 모바일 쿠폰을 다운받아와서 10%할인도 받았다. 인터넷으로 다운받았는데 진짜 할인해줄까 싶었는데 흔쾌히 해준다.
탄이와 헤어져 탈의실로 들어갔는데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실내가 매우 고급스럽고 깨끗하다. 샤워시설과 비치용품들도 매우 품질이 좋았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나가보니 거센 바람에다가 무지 추워서 김이 모락모락나는 물속으로 곧장 들어갔다.
물 온도도 적당하고 너무 좋다. 이곳은 해수 온천이라 짠물이다. 바다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어 뜨끈한 온천욕을 하며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이 너무너무 매력적이었다. 사람들도 많지않아 편안하게 온천을 즐길 수 있어 좋았다. 탄이도 무척 행복해한다. 얼굴에는 눈송이가 떨어지지만 몸이 따뜻하니 기분이 좋다.
풀도 꽤 넓고 여러개가 있어서 이곳저곳을 다녀보는 재미가 있다. 한 쪽에는 음료와 스낵을 파는 곳이 있는데 가격이 후달달하다. 점심시간이 되어 출출해졌을때 탈의실 라커에 가서 미리 비기네에서 만들어온 샌드위치를 먹었다. 탄이에게도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말고 탈의실 가서 잘 먹으라고 줬다. 조금 궁상스럽기는 했지만 이곳 물가를 보면 기꺼이 그럴만 하다.

온천에 들어가있는데 추운 날씨에 수증기가 머리에 맺힌 것이 얼어버렸나보다. 탄이 보고 안스러워한다. "아니야 괜찮아. 하나도 안추워. 따뜻하고 편하고 너무 좋아." 한쪽에는 습식 사우나도 있었는데 사람이 없어 우리가 전세내고 마음껏 즐겼다.
규모는 크기 않지만 온천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던 지오씨, 아이슬란드에서 최고로 좋았던 경험이다.
바다와 눈 쌓인 산을 바라보며 뜨끈한 온천욕을 즐긴 추억은 평생 갈 것 같다. 아이슬란드 여행 중 최고의 경험이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hN2xDlFg720?si=1fYzN4IZ2Wq1QmUj>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