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쎄요, 설마 반도체에도 관세를 매길까요?"
몇 달 전 들은 한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외국산 반도체에 고율 관세를 부과할지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마주한 현실은 달랐고, 기류도 바뀌었다. 같은 질문을 던지면 이젠 하나같이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답만 따른다.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는 사실상 무관세로 거래되고 있다.
하지만 상식이 흔들리는 시대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으로 들어오는 반도체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했다. 미국의 반도체 관세정책은 정해진 것이 없으나, 국내 기업도 타격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에 대규모 공장을 짓거나 준비 중이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미국 내 생산은 인건비와 운영비가 높아 애초에 기업에 부담이 되는 데다가 보조금 축소 가능성도 나와서다. 게다가 미국이 중국산 범용 반도체에 대한 추가 제재를 고민하는 등 중국에 대한 수입통제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만큼 중국 내 공장을 운영하는 국내 기업들은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다.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국가적 차원의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탄핵 등 정치적 이슈가 다가올 '설마'에 대한 대비조차 어렵게 하고 있다. 외교적 서포트는 물론 국내 기업이 무역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정책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글로벌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 기업이 살아남으려면 기업이 관세·비용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다행히 정부는 최근 반도체 투자세액공제율을 상향하는 등 전략기술 세액공제를 확대키로 했다. 반도체 연구개발(R&D) 인력의 주 64시간 특별연장근로 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기로 한 점도 업계에 긍정적이다. 급변하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에 대응하려면 신속한 제품 개발 등이 필요하고, 그만큼 유연한 근로시간 운영이 중요한 점을 반영한 것이다. 또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주 52시간 예외 조항이 포함된 반도체특별법을 통과시켜 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을 제고하는 것이 시급하다.
반도체 산업은 단순 시장 논리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설마' 했던 반도체 관세가 현실에 가까워진 지금, 한국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 적극적인 지원이 동반돼야 할 시점이다.soup@fnnews.com 임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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