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신용평가기관인 S&P가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기존의 AA-에서 AA로 상향조정했다. 작년 9월에 A+에서 AA-로 등급을 올렸다가 11개월 만에 또다시 등급을 올린 것이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영국, 프랑스, 벨기에와 동일한 신용등급의 반열에 올랐고, 전 세계에서 우리보다 신용등급이 높은 나라는 6개국(독일, 캐나다, 호주, 싱가포르, 홍콩, 미국)에 불과하다.
국가신용등급 상승은 분명 매우 반가운 일이다. 한국 경제에 대한 대외적인 신뢰도가 높아졌다는 뜻이며, 국내 기업들의 해외차입비용 감소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신용등급 상승을 의아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많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급증하는 가계부채와 지지부진한 기업구조조정으로 인해 위기에 대한 우려감은 커져만 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의 경제보복이 현실화되고 있어 우리 경제의 앞날은 더욱 불투명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발표된 신용등급 상승은 사실 굉장히 뜬금없어 보이고 대내외적인 시각 차이가 너무 큰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를 자아낸다.
국가신용등급과 실물경제 사이의 괴리감은 최근 우리 기업들의 신용등급 하락 추세와 비교해볼 때 더욱 뚜렷하다. 2013년 이후로 국내 신용평가 3사가 발표한 국내 기업들의 신용등급 변화를 살펴보면 등급상승보다 등급하락이 현저하게 높게 나타났다. 2013년에서 2015년까지의 등급상승은 각각 70회, 45회, 26회 이루어졌으나 등급하락은 각각 111회, 133회, 159회 발생했다. 등급상승은 줄어들고 등급하락은 증가하는 추세가 뚜렷했다. 이러한 추세는 올해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상반기 신용등급 하락 건수는 상승 건수보다 2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기업들의 신용등급은 악화돼 가는데 국가신용등급은 작년부터 역주행하듯 2단계나 올라갔다.
국가신용등급은 정부부채 상환가능성에 대한 평가의견이기 때문에 기업의 신용도나 가계의 건전성과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부채상환 가능성의 평가기준이 되는 재정건전성, 외채구조, 경제성장률, 무역수지 등이 큰 영향을 미친다. 북미나 유럽 국가들에 비해 안정적인 재정건전성, 낮은 수준의 단기외채, 2% 중후반대의 경제성장률, 불황형 흑자이기는 하지만 계속되는 무역흑자 등을 감안한다면 AA라는 국가신용등급이 이상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국가경제의 중요한 구성요소인 기업과 가계의 경제적 어려움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의 국가신용등급 상승은 왠지 어색해 보인다. AA라는 성적표가 반갑기는 하지만 큰 의미를 둘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을 보러 마트에 가게 되면 우리는 발표된 물가상승률은 낮은데, 체감물가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종종 느끼게 된다. 0%대 물가상승률이라는데 장바구니는 빈약하기만 하다. S&P의 등급 상승도 아마 이런 맥락에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잘하고 있다는 칭찬을 받기는 했는데 현실생활에서 달라질 건 별로 없어 보인다. 그리고 최상위권의 신용도를 가진 국가에서 생활하는 국민들의 삶은 여전히 너무나 팍팍한 것이 사실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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