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마지막 한분까지 가족 품으로" 노력
"9·19 군사합의’ 명시 남북공동유해발굴에 북측 호응 기대
"9·19 군사합의’ 명시 남북공동유해발굴에 북측 호응 기대
국방부는 이날 "발굴된 유해들은 현장감식 결과 다수가 국군전사자 유해로 추정되고 있으며 정확한 신원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서 정밀감식과 DNA 분석 등을 통해 확인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강원도 철원의 무명 395고지로 불리었던 백마고지는 지금으로부터 69년 전 1952년 10월 6·25전쟁 당시 중부전선의 중요 전투지역이었다.
유품 중에는 6·25전쟁 당시 사용되었던 야삽, 철모, 탄피 등 각종 탄약 및 전투장구류 등이 포함되어 있다.
국군 9사단은 3배가 넘는 중국군에 맞서 열흘 동안 총 12차례의 공격과 방어전투를 수행했으며 수많은 국군전사자들이 조국을 위해 희생했다.
우리 군은 유해발굴을 진행하면서 백마고지 지역 개인호, 교통호 등의 진지들이 화살머리고지 지역에 비해 2배 이상의 깊이로 구축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백마고지에서는 유해·유품들이 약 1.5m 깊이에서 발굴되는 반면, 화살머리고지 지역의 경우 최대 60cm의 깊이에서 발굴되고 있다.
이는 당시 치열한 전투를 증명하는 것으로 백마고지의 주인이 수차례 바뀌는 상황에서 피·아 모두 고지를 사수하고 포탄으로부터 생존성을 보장받기 위해 기존 진지보다 더 깊게 파고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수습된 26점의 유해가 모두 부분유해 형태로 발굴됐으며, 이는 백마고지에 쏟아졌던 다량의 포탄으로 인한 피해상황을 추측할 수 있다.
이곳에서 발견된 유품 다수가 우리 국군이 사용하던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대부분은 탄약류로 4980여점(97%)이며, 특이유품으로 음료병을 활용한 화염병이 발굴되기도 했다.
아군유품 4927점(96%)과 적군유품 154점(3%), 식별 불가(51점, 1%)이 말해주는 것은 고지를 뺏고 뺏기는 과정에서 탄약류 등을 긴급히 처리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긴박한 순간을 반증하고 있으며, 화염병 등을 활용한 진지 공격 등의 전투기술이 활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방부는 11월 중순 9분의 백마고지 전투 참전용사들을 모시고 현장증언 청취를 진행할 계획이다.
6·25전쟁 당시 9사단·2사단·노무사단 등 대한민국 국군으로 백마고지 전투에 참전하였던 젊은 영웅들이 어느덧 90세가 넘어 귀환하지 못한 전우들을 찾기 위해 현장을 방문한다.
우리 군은 6·25전쟁 전투기록과 참전용사들의 증언, 백마고지 현장의 지형적 특성 등을 면밀히 연구하는 가운데 유해발굴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국방부는 "9·19 군사합의’에 명시된 남북공동유해발굴에 북측이 호응하도록 지속 노력하는 가운데 언제라도 남북공동유해발굴을 개시할 수 있도록 제반 준비조치를 마련하고 있다"면서 "비무장지대를 포함한 모든 지역에서 6·25전쟁 전사자 마지막 한 분까지 가족과 조국의 품으로 모실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6·25전쟁 전사자 유해의 신원확인을 위해서는 유해소재 제보, 유가족 시료채취 등 국민적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국방부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국민적 공감대 확산과 참여를 유도해 나갈 예정이다.
한편, 유해소재 제보나 유가족 시료채취 참여 문의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대표전화로 하면 된다.
특히, 유전자 시료 제공으로 전사자 유해의 신원이 확인될 경우 심사를 통해 최대 1000만원의 포상금이 지급된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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