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돈도 소용없었다…'암투병' 아내 살해한 남편[가족간병의 굴레]③

뉴스1

입력 2023.05.30 05:04

수정 2023.06.07 09:24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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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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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파킨슨병 환자인 80대 남성이 자신을 간병하던 70대 아내에게 말했다. "미안하다"고. 아내는 간병 후유증으로 병원에 입원한 후 40대 아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너의 아버지 간병을 맡겨 미안하다"는 이유로. 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한국에서 '가족간병의 굴레'는 과장이 아닌 현실이다. <뉴스1>은 간병가족을 직접 만나 복지 사각지대 실태를 점검했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모색했다.

(서울=뉴스1) 조현기 기자 = 지난 23일 오후 서울 한강변에 인접한 A아파트. 출입카드가 없거나 비밀번호를 모르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외부인 방문 시 신원 확인은 필수였다.

아파트 곳곳에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었다. 최근 매매가 약 28억원에 달하는 A아파트에서는 출입구부터 '철통 보안'이 이뤄졌다.

그러나 단지 내 가족 간 비극은 막을 수 없었다. A아파트 주민 B씨(60대)는 지난 4월 말 암투병 중인 50대 아내를 거주지에서 숨지게 한 후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B씨는 장기간 아내를 간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범행 직후 병원으로 이송된 그가 회복하는 대로 사건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다.

외부 시선이 차단된 사이 '간병살인'이 발생한 것을 두고 이곳 주민들은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재차 반문했다. 간병살인이란 간병인이 피간병인을 숨지게 하는 범행을 의미한다.

◇'순간적 격정·분노' '장기간 간병 스트레스'

간병살인의 주요 원인은 치료비와 생활고 등 경제적인 어려움이 지목된다. 하지만 B씨 사건이 보여주듯 경제적인 여유가 극단적인 상황을 막아주는 것은 아니다. 자산의 크기와 상관 없이 '돌봄의 사각지대'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전문가들은 간병살인이 일어나는 이유는 '복합적'이라고 한목소리를 낸다. 분노나 스트레스 등 심리적 불안정 요인이 다른 환경적인 요인과 결합해 강력범죄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간병살인 가해자 절반 이상이 가족인 것도 특징이다.

박숙완 경상국립대학교 법학과 강사가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에 등재한 '노인 간병범죄 원인분석과 대책방안에 관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8년까지 간병살인으로 숨진 사람은 213명이다. 그중 114명(53.5%)은 가족의 범행으로 숨을 거뒀다.

돌봄 환자를 살해한 후 극단선택으로 숨지거나, 돌봄 환자와 동반 극단선택을 시도한 간병인은 89명이나 됐다. 돌봄 환자를 남기고 간병인 자신만 극단 선택한 경우는 10명이었다. 한 해 16.4명, 한 달 1.4명꼴로 간병살인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범행 주요 동기는 △경제적 어려움(48%) △순간적 격정 분노(38.9%) △장기간 간병 스트레스(38%) △난폭한 치매증세(32.4%) △처지비관(24.1%) △다른 가족부담완화(20.4%) △동반자살시도(20.4%) △환자 고통경감(13%) △가정불화(13%)였다.

치매와 뇌혈관 질환 등 장시간 간병이 요구되는 노인성 질환 환자일수록 범죄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도 크다. 간병살인 피해자 108건 중 절반 이상(53.7%)이 치매 환자였다.

박숙완 강사는 "심리적 불안정이 간병살인 동기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초고령사회가 진행 중인 현 시점에서 간병살인·간병자살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과 더불어 간병살인 범죄자에 대한 체계적인 대책의 수립이 절실하다"고 적었다.

◇"일반 강력범죄와 달라…원인 심층적 분석해야"

간병살인에 적극 대응하는 나라로는 일본이 꼽힌다. 일본은 2006년 65세 인구 비율이 20%을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이후 2007년 현지 경찰청에서 간병살인을 '사회문제'로 분류해 관련 통계를 분석하고 있다. 사건 발생 때마다 간병살인을 유형별·시기별로 정리한 게 특징이다.

우리나라는 2010년부터 언론 보도를 통해 '간병살인'이란 용어를 쓰고 있다. 그러나 간병살인 이해와 개념적 정리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많다. 정부 차원에서 관리해 제도적으로 해결할 '복지' 문제가 아닌 가족 간 부양 문제로 간병을 치부한다는 지적이다.

학계에서는 모방 범죄 우려가 있는 만큼 간병살인 처벌 기준을 명확히 하고 가해자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이은영 동국대학교 법학박사·전연규 용인대학교 경찰학 박사수료생은 지난해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에 등재한 논문 '간병살인 범죄의 특징과 대응방안에 관한 연구'에서 "간병살인을 일률적으로 살인죄로 처벌해 형량의 기준이 모호하다"며 "가족을 죽인 살인자라는 굴레를 계속적으로 이어나가지 않도록 양형위원회에서 살인 동기부분에 간병 등의 사유를 첨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어 "간병살인 범죄의 경우 국민참여재판의 활성화와 항소를 포기하는 가해자들에게 항소권고제를 도입해 다시 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하고 재기할 수 있도록 법률적 지원 체계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 논문 분석 결과 간병살인 피고인들이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극단적인 범행에 이른 시간은 평균 6년3개월이었다. 피고인들 중 최대 간병기간이 30년인 사람도 있었다.

범죄 전문가들도 일반 강력범죄와 동일선상에 두고 간병살인을 평가해선 안 된다고 제언했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간병살인을 인식해 대응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일반적인 살인에는 상대방을 고의로 숨지게 하는 '적대적 범행 동기'가 존재하지만 (간병살인은) 간병인들이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간병인들은 결국 자기 파괴임을 알면서도 간병살인을 선택했다"면서 "원인을 심층적으로 잘 분석해 우리 사회가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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