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형준 기자 = "제 사주가 28세부터 인생이 확 풀린다고 하거든요. 삶이 힘들면 무의식적으로 그때가 기다려져요."
지난 7월 취업한 사회 초년생 정모씨(26·여)는 힘들 때마다 사주 상담 내용을 떠올린다. 친구 따라 철학관을 방문해 얼떨결에 상담을 받았지만 특정 시점에 인생이 풀린다는 역술인의 말에 힘을 얻었다.
사주팔자에 진지한 MZ세대(1980년대 초반생~2000년대 초반생)는 정씨만이 아니다. 기성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사주명리학이 성격 유형 검사인 MBTI와 함께 젊은 세대의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다.
취업난과 경제난 등 만만치 않은 현실을 체감한 청년들이 미래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철학관 문을 두드린다는 분석도 나온다.
◇흥미로 시작해 공부까지
단순히 흥미로 사주를 보기 시작해도 흥미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연애운과 이직운이 궁금해 종종 사주 상담을 받는다는 이모씨(31·여)는 "MBTI처럼 나를 범주화하는 팔자 풀이에 흥미를 느꼈다"며 "사주에 해가 없는 편이라 붉은색 물건을 지니는 것이 좋다고 해 이를 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진로 고민으로 사주 상담을 받은 홍모씨(26·여)는 올해 몸조심해야 한다는 운세를 듣고 건강을 챙기고 있다. 홍씨는 "명리학 공부에 흥미가 있다는 사주라는데 실제로 유튜브를 보며 공부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사주 명리학을 바탕으로 한 콘텐츠도 쏟아지고 있다. 지난 4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을 통해 공개됐던 실험 다큐멘터리 'MBTI vs 사주'가 대표적이다. 해당 프로그램은 MZ세대가 열광하는 MBTI와 사주를 통해 실험 참가자들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자 추석 연휴였던 지난달 28일 tvN에 특별 편성되기도 했다.
유튜브와 스마트폰 앱으로 사주를 볼 수 있는 서비스도 유행이다. 사주를 바탕으로 궁합이 맞는 짝을 찾아주는 소개팅 앱부터 AI 기반의 사주 상담 서비스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특히 소개팅 앱 '궁합팅'은 사주정보를 기반으로 이용자를 연결해 "서로의 사주 궁합을 알고 만날 수 있어 좋다" "사주 상 나에게 부족한 요소를 채워주는 짝을 찾아줘서 유익하다"는 리뷰가 줄을 잇고 있다.
사주명리학 전문가 김동완 동국대 미래융합교육원 교수는 "사주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경로가 많이 생겨 기성세대부터 젊은 세대까지 인기를 끌고 있다"면서도 "컴퓨터 프로그램 등 사주 콘텐츠들은 사주를 진지한 상담이라기보다 단순 흥미 위주로 만들어져 전문적이지 않다는 위험성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부작용 우려는 없나
MBTI에 푹 빠져 타인과 관계 맺는 자신의 성격에 집중했던 MZ세대가 불확실성이 있는 사회 현실과 맞부딪히면서 '사주팔자'로 회귀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젊은 세대의 지나친 사주 '삼매경'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사회 현실이 답답하다 보니 해답을 찾는 틀로서 사주가 젊은 세대에 전파되고 있는 것"이라며 "사주명리학의 근거를 떠나 지나치게 의존하면 자신의 사회적 성취에 대한 열망이 꺾여버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특히 젊은이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서 개인적 불안이 커졌다"며 "사주를 통해 자신감을 얻고 본인의 미래를 예측해 보려는 심리"라고 분석했다. 이어 "사주를 필요에 따라 볼 수 있지만 맹목적으로 믿거나 다른 생활에까지 사주의 특성을 들여오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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