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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등돌린 의정, 남탓만 말고 마주 앉기부터 하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3.24 19:15

수정 2024.03.24 19:15

전공의 면허정지, 교수 사직 시작
대화 물꼬 터 함께 현안 논의해야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의·정 갈등'으로 인해 의료 공백이 길어지는 가운데 지난 22일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사가 복도를 걷고 있다. 사진=뉴스1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의·정 갈등'으로 인해 의료 공백이 길어지는 가운데 지난 22일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사가 복도를 걷고 있다. 사진=뉴스1

정부와 의사들의 극한 대립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25일부터 정부는 미복귀 전공의에 대한 3개월 면허정지 행정처분을 단행한다.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들은 이날 집단사직서를 내고 근무단축 투쟁에 돌입한다. 이들은 사직서 제출과 동시에 외래진료, 수술, 입원진료를 주 52시간으로 줄인다.

다음달 1일부터 외래진료마저 축소하고 중증·응급 환자 치료만 할 방침이다.
26일엔 차기 대한의사협회장이 결정된다. 결선투표에 나선 두 후보 모두 강경파여서 투쟁 수위가 더 높아질 태세다. 지난 22일 의협이 "현 정부를 대한민국 정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도발적 성명서에서 정부에 대한 강한 저항이 확인된다.

전공의들은 물러설 생각도, 현장에 복귀할 의사도 없는 상태다. 전체의 93%, 1만1000여명의 전공의들은 행정처분 압박에도 꿈쩍하지 않고 있다. 의사집단은 결국 정부가 백기를 들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면허 일시정지는 의사 직업을 유지하는 데 큰 변수가 안 된다고 보는 것이다. 의대 교수들은 뒤늦게 '의대 증원 2000명' 근거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시간을 갖고 재검토하자고 주장한다. 이미 정부는 의대생 2000명 증원을 확정하고 비수도권 지역에 82%(1639명), 경기·인천권에 18%(361명)를 배분한다고 발표한 상태다. 번복할 수 없다.

의사들은 의견을 모으지 못한 채 각개전투 식으로 반정부 여론전을 벌이고 있다. 이런 방법으론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 대다수 국민은 의대 증원과 의료개혁을 지지하고 있다. 치료와 진료가 급한 환자들은 의사들의 복귀를 진정 바라고 있다. 안타깝게도 의료공백 사태가 단기에 해소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정부가 중증·응급 치료에 빈틈이 없도록 만전을 기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다행스러운 점은 중증·응급 의료체계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가동되고 있는 것이다. 또 상급종합병원 환자가 절반 이하로 줄어 건강보험 지출도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의료공백 장기화가 역설적으로 건강보험 재정에 긍정적 기여를 하는 것이다. 조금만 아파도 여러 병원을 다니고, 상급병원에만 가려는 비정상적 행태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대화의 물꼬가 트이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4일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집단사직을 결정한 전국의대교수협의회와 만나 현안을 논의했다. 집권 여당의 갈등중재 가능성을 타진한 이번 만남은 의대교수협의회에서 먼저 제안했다고 한다. 대화의 장이 지속적으로 열리는 게 중요하다.

이렇게 의대 증원 논쟁을 미래지향적 현안으로 넘어서야 한다. 누구 탓인지를 떠나, 우리의 의료체계가 왜곡됐다는 것은 의사와 정부가 같은 생각 아닌가. 서울·수도권 상급종합병원 과잉 의존과 지역·필수 의료가 붕괴된 근본 원인을 함께 찾아보면 될 일이다.
의대 교육이 부실화되지 않고, 지역에서 필수의료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환자들의 '의료쇼핑'을 차단하고 합리적인 건강보험 재정과 진료체계를 확립하는 방안, 열악한 처우의 전공의 수련환경을 개선할 대안 등 논의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이해당사자인 의사 전문가집단이 창의적 대안을 내놓아야 정부가 합리적으로 수용할 것 아닌가. "범법자, 몰염치한 의사집단으로 정부와 끝까지 싸우겠다"는 식으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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