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조 삭감안 단독처리 본회의 상정
정부 동의받지 않고는 헌정사 처음
정부 동의받지 않고는 헌정사 처음

거대 야당이 내년 예산안을 일방적으로 쥐락펴락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나라살림을 정상화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라며 단독 처리한 예산안과 부수법안 일체를 2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겠다고 밝혔다. 법정기한(12월 2일) 내 처리하고, 증액이 필요하면 추가경정예산을 다시 요구하라는 압박이다. 정부의 예산편성 권한을 무시한 야당의 횡포가 아닐 수 없다.
민주당은 지난달 2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4조1000억원을 감액한 내년도 예산안 673조3000억원을 일방적으로 처리해 버렸다.
감액 예산안 일방적 처리는 '확장재정'을 견지한 민주당의 역공일 수도, 자충수일 수도 있다. 지역예산을 늘리지 못한 지역구 의원의 반발 등 내부 후폭풍도 있을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1일 "정부가 증액이 필요한 수정안을 내면 이후 협의하면 된다"고 밝힌 이면엔 이런 속사정도 있을 것이다.
민주당은 내년 예산에서 초부자 감세와 권력기관 특활비 등을 4조1000억원 삭감했다. 검찰 특정업무경비(특경비) 506억원,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 특수활동비(특활비) 82억원, 감사원 특경·특활비 60억원, 경찰 특활비 31억원을 전액 삭감했다. '이재명 방탄용', 김건희 여사 특검 거부권에 대한 보복성 예산 삭감으로 볼 소지가 다분하다.
불똥은 국민들한테 튈 텐데 마약·사기·디지털범죄 등 급증하는 신종 민생범죄 수사 전반의 차질이 더 걱정스럽다. 정부가 505억원을 책정한 '대왕고래 프로젝트'(동해심해 가스전 개발) 예산도 8억원만 남겨놓고 모두 잘라냈다. 사업 추진을 사실상 어렵게 해버린 것이다. 재해·재난 등에 대비한 예비비 4조8000억원도 절반으로 삭감됐다. 지자체의 재정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세입·세출을 맞추는 세법 개정안도 합의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렇게 예산이 툭툭 잘려나가면서 집행상 엇박자가 나게 생겼다. 국민의힘은 예산안 삭감에 일방적 처리까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다. 대통령실이 "감액 예산안을 철회하지 않으면 증액협상도 없다"고 배수진을 쳤지만 예산이 더 절박한 쪽은 정부와 여당이다.
여야와 정부가 투명하게 협의해 합당한 예산안을 수립하는 것은 국회의 마땅한 본분이다. 재정을 축내는 선심성 예산을 없애고 줄이는 것 또한 맞다. 예산안 심의 막판에 '쪽지예산'으로 통하는 주고받기식 선심성 지역민원 예산이 그런 것이다. 여야 예결위 간사와 기획재정부 관료 등 소수가 모여 회의록도 없이 밀실 합의해 끼워 맞추는 예산은 사라져야 할 악습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민원을 들어주려고 투명한 근거도 없이 책정된 국고보조금이 2021년부터 4년간 2520억원에 이른다.
우리 경제는 수출마저 위축돼 장기침체, 저성장에 빠져들려고 한다. 세수는 더 줄어들 테고 양극화 해소와 사회복지 정책을 늘리자니 세금은 더 필요하다. 국민들 세 부담을 늘려야 한다는 얘기다. 불요불급한 예산을 합리적으로 줄이는 것은 절박한 상황이다. 이런 과정에서 야당이 합의 절차를 무시하고 횡포를 부려서는 안 된다. 일방적 예산 처리를 재고하고 여야 합의로 투명하고 합당한 예산안을 처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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