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신건웅 기자 = '초격차'란 수식어가 익숙했던 삼성전자가 '동네북' 신세가 됐다. 고대역폭메모리(HBM)는 SK하이닉스에 치이고, 파운드리는 TSMC에 밀린다. 주가까지 '5만전자'에서 벗어나질 못하면서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사방에서 삼성전자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질수록 '삼전개미'들의 근심도 커지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더 나빠지긴 힘들다"면서도 삼성전자의 부활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봤다.
국민주 삼성전자의 '굴욕'…"동네북 신세 됐다"
2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전자(005930)는 24일 5만37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지난해 고점인 7월 11일(8만8800원) 대비 39.5% 내린 수치다.
경쟁사인 SK하이닉스(000660) 주가가 지난해 7월 11일 24만8500원에서 이날 22만1000원으로 11.06% 하락한 것을 고려해도 낙폭이 크다.
외국기업과 비교하면 더 처참한 성적이다. 삼성전자 주가가 1년 동안 27.43% 빠지는 동안 엔비디아는 145.9%, TSMC는 60% 올랐다.
삼성전자 주가를 끌어내린 주범은 외국인이다. 지난 7월 고점 이후 22조6400억 원 넘게 팔았다. 보유율도 56.55%에서 50.24%로 6.31%p 낮아졌다.
삼성전자는 실적에서도 1위 자리를 내줬다.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이 6조5000억 원으로, SK하이닉스(8조828억 원)에 밀렸다.
삼성전자의 굴욕은 그동안 세계 1위를 지키던 반도체(DS) 부문 부진 탓이 크다.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등 중국 기업이 범용 D램을 저가에 쏟아내면서 가격이 하락한 것이 원인이지만, 고성능 반도체 HBM의 경쟁력 약화는 뼈아픈 부분이다.
SK하이닉스가 인공지능(AI) 시장을 주도하는 엔비디아에 HBM을 독점 납품하다시피 하는 동안 삼성전자는 퀄테스트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에서 삼성 HBM에 대해 "설계를 새로 해야 한다(Have to engineer a new design)"고 말하기도 했다.
파운드리도 문제다. 삼성전자는 오는 2030년까지 파운드리 1위에 오르겠다고 선언했지만, 지난해 3분기 기준 점유율은 9.3%에 불과하다. TSMC는 64.9%에 달한다. 빅테크 기업들이 모두 TSMC에 물량을 맡기고 있다.
결국 삼성 기술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면서 외국인들이 매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AI 반도체에서 뒤처진 삼성보다는 미국 엔비디아나 경쟁사인 SK하이닉스, TSMC가 더 낫다는 판단이다.
빠질 만큼 빠진 주가, 추가 하락 제한적…반등은 지켜봐야
삼성전자 주가는 더 이상 빠지기 힘든 수준까지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97배까지 낮아져 역사적 하단을 기록 중이다. 청산가치를 밑도는 셈이다.
삼성전자가 자사주 10조 원을 매수하기로 하는 등 주가 방어에 나선 것도 긍정적이다. 이 중 3조 원어치는 소각 예정이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에 대해 어닝 모멘텀이 아닌 밸류에이션으로 접근하는 분위기다. 부정적인 요소 상당 부분이 이미 주가에 반영된 만큼 주가 하락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판단이다.
변수는 HBM의 엔비디아 퀄 통과 시점과 금리 인하에 따른 수요 회복 가능성 등이 꼽힌다. 갤럭시S25 판매량도 주가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 주가는 향후 호재에 민감한 주가 영역에 진입할 것"이라며 "올 3분기부터 HBM3E 12단을 시작으로 엔비디아 공급 본격화가 추정되고, AI 주문형반도체(ASIC) 수요 급증으로 올 하반기부터 브로드컴·구글·아마존(AWS) 등으로 HBM3E 12단, HBM4 공급 확대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1분기 실적 저점을 확인 후 하반기로 갈수록 실적 개선 폭 확대가 기대된다"며 "트럼프가 향후 4년간 710조 원 규모의 사상 최대 AI 투자를 발표하고, 올해 북미 4대 빅테크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업체당 평균 70조 원을 상회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메모리 글로벌 1위인 삼성의 메모리 공급 확대 없이 AI 투자 확대도 여의치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일부에서는 삼성전자의 실제 부활까지는 상당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봤다. 범용 반도체 가격 하락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년간의 반도체 상승·하락 사이클은 1.5~2년간 이어졌다. PC, 모바일, 가전, 전장까지 수요도 부진한 상황이다.
송명섭 iM투자증권 연구원은 "향후 삼성전자 주가는 크게 하락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반도체 하락 사이클이 이제 막 시작됐고 실적에 대한 컨센서스가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높아, 본격적인 주가 상승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