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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산불 추경', 이게 싸울 일인가

정인홍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3.30 18:41

수정 2025.03.30 18:41

정인홍 정치부장
정인홍 정치부장
역대 최악의 산불 피해로 영남권이 거의 초토화됐다. 약 1주일간 화마가 할퀴고 가는 바람에 주민들은 소중한 삶의 터전을 잃었다. 사상자도 많았다. 건물 수천채가 불에 타 수천명의 이재민까지 발생했다. 지난 22일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괴물 산불'은 경북지역 전역으로 확산돼 서울 면적의 75%를 먹어치웠다.

부상자와 이재민 중엔 노년층이 많아 대피생활도 쉽지 않다. 온 마을을 뒤덮은 매캐한 연기에 숨 쉬기조차 불편하고, 거동까지 힘들어 몸을 건사하기도 힘들다. 시뻘건 불길이 강풍을 타고 순식간에 마을과 산을 집어삼키는 장면은 평생 트라우마로 남게 됐다.

이재민들이 평온한 일상을 되찾고 피해를 복구하려면 속도감 있는 정부의 행정·재정적 지원이 절대적이다. 하지만 지금 이른바 '산불 추가경정예산' 규모를 놓고 싸우는 정치권의 모습은 볼썽사납다. 앞다퉈 피해현장을 찾아 '산불피해를 신속히 복구하자'고 해놓고 정작 추경 규모를 놓고선 양보 없는 설전을 벌인다. 탄핵정국을 거치면서 답보상태에 머물던 여야 간 추경 논의가 이번 산불사태로 모처럼 의기투합하는가 싶더니 서로 드잡이하기 바쁘다.

여기에는 여지없이 '정쟁'이 숨어 있다.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은 올해 예비비(2조4000억원) 중 산불 피해복구 지원 등에 즉시 사용할 수 있는 '목적예비비'가 고작 4000억원 수준이라며 2조원 규모의 재난예비비 추경을 '원포인트'로 하자는 입장이다. 특히 원내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말 올해 예산안을 심사하면서 정부가 제출한 4조8000억원 중 무려 절반이나 깎았다며 '야당 책임론'을 들었다. 반면 민주당은 여당이 민주당 주도의 감액예산안 단독 처리를 명분 중 하나로 내세운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합리화하려는 정략적 술수가 깔렸다고 의심한다. 민주당은 나아가 기편성된 예비비에다 부처별로 분산돼 있는 약 9000억원 규모의 재해재난대책비 등 남은 가용예산을 활용한다면 충분하다며 여당의 예비비 추경 요구에 난색을 표했다. 국민의힘은 "재원이 충분한다는 건 야당의 사기극"이라고 맞받았고, 민주당은 "야당의 예산삭감 탓만 하는 여당이 거짓말한다"며 서로 '네탓공방'을 펼치고 있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가 임박한 상황에서 이어지는 여야 간 첨예한 대립도 산불 피해복구 관련 추경 논의를 더디게 하는 요인이다. 민주당은 입법권력을 앞세워 마은혁 헌법재판관을 4월 1일까지 임명하지 않을 경우 탄핵 기각으로 직무복귀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에 대한 재탄핵을 추진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직전 대통령 권한대행인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탄핵소추안은 이미 발의했다. 민주당의 이른바 쌍탄핵이 현실화돼 두 사람이 직무정지가 된다면, 추경 등을 논의할 테이블인 여·야·정 국정협의체가 다시 표류할 수 있다. 야권은 내친김에 나머지 국무위원들에 대한 줄탄핵 경고장도 날렸다.

다행스럽게도 최상목 부총리가 30일 '긴급 경제관계장관회의' 후 조속한 산불 피해복구 등을 포함한 10조원 규모의 필수 추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트럼프 미국 2기 행정부의 통상압박 대응 및 영세 소상공인 지원 등이 망라돼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다중채무자이면서 저소득 또는 저신용 차주인 '빚더미' 자영업자가 지난해 말 기준 43만명에 달했다. 소비 등 내수부진에다 장기간 경기침체로 채무상환능력이 크게 떨어져서다. 말 그대로 생존절벽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형국이다. 문제는 속도다. 국가적 대형 재난 극복에는 당파도, 당리당략도 끼어들어선 안 된다. 여야 합의가 빠를수록 추경예산 집행도 빨라진다. 시급한 민생에 정쟁을 걷어내면 막대한 피해를 입은 주민들의 평온한 일상적 삶을 하루라도 빨리 앞당길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 피해주민들의 속은 남은 재로 타들어가고 있다. 산불 진화는 속도가 관건이다. 산불 피해복구 역시 속도가 고갱이다.

haeneni@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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