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내 생산은 상대적으로 위축될 여지...일자리도 줄어들 듯

[파이낸셜뉴스] "단지 공장을 짓기 위해 이곳에 온 게 아니라, 뿌리를 내리기 위해 왔다."(지난달 26일 미국 조지아주 공장 준공식에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강성 노조,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각종 규제, 높은 인건비 등으로 시름하던 국내 기업들이 해외 생산기지 구축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트럼프 발(發) 관세전쟁'이 본격화되는 등 미국이 생산기지 이전을 강력히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 전개되면서, 기업들이 대미 투자를 대폭 확대하는 방향으로 검토에 돌입했다. 지금까지는 대기업들의 해외 투자가 1, 2차 부품, 소재기업들의 수출 증가를 낳는 등 나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왔으나, 미국의 생산지 이전 압박 요구가 커지면서 제조업 기반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트럼프 관세까지, 韓 제조업 '위기'
6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반도체·자동차·배터리 기업들은 추가 대미 투자를 저울질하고 있다.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도 미국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반도체 소부장 기업인 솔브레인은 미국 텍사스주 삼성전자 테일러 신공장에 최대 8000억원을 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진쎄미켐은 삼성물산·미국 마틴 사와 합작 설립한 DSM쎄미켐의 텍사스주 황산 공장을 지난해 준공하고, 가동시킨 바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장비에서는 수리 등을 위해 소규모지만 국내에서 인력이 이동하고 있고, 소재나 부품 업체들은 활발하게 미국으로 진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렇게 되면 한국 내 생산은 상대적으로 위축될 여지가 있다. 앞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기업인 대만 TSMC가 지난 3월 미국 내 생산 능력 확대를 위해 1000억달러(약 146조1000억원)의 투자를 발표한 당시에도 이 같은 우려가 나왔다. 차이나데일리 등 해외 외신은 "TSMC가 공동화된다면 대만의 산업적 이점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며 "대만인의 80% 이상이 TSMC의 첨단 기술을 미국으로 이전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는 설문도 나왔다"고 꼬집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학과 교수는 "투자를 추가로 더 한다고 가정할 때 특히 우려스러운 부분은 기술 유출"이라며 "미국 입장에서는 일자리가 늘어나 좋겠지만, 내수 관점에서 보면 좋을 게 없다"고 했다.
■미국 현지 생산 확대되면 대미 수출은 감소
25%의 품목관세 부과가 시작된 자동차도 미국 생산을 확대할 계획이다. 미국 현지 생산량이 확대되면 자연스레 대미 수출량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에 완공한 신공장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의 가동을 본격 시작했다. HMGMA 부지에는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현대제철, 현대트랜시스 등 4개 계열사와 LG에너지솔루션과의 합작 공장이 들어선다. 현대차그룹이 직접 투자한 금액만 11조원에 이르며 부품 협력사까지 고려하면 파급력이 더욱 크다. 이를 토대로 현대차그룹은 향후 미국 현지에서 연 120만대 생산 체제를 갖추기로 했다. 현대제철은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전기로 일관 제철소 건설을 추진한다. 현대제철이 해외에 제철소를 짓는 것은 이번이 최초 사례다. 현대차그룹은 제철소 건설 등을 포함해 향후 210억달러(약 31조원)를 미국에 추가로 투자할 예정이다. 이에 발맞춰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배터리 3사도 미국 내 투자를 계속 확대한다.
지난해 전 세계 자동차 생산 순위에서 한국은 멕시코에 밀려 7위로 한 계단 떨어졌는데, 트럼프 행정부의 25% 관세 부과로 올해 국내 자동차 생산은 더 위축될 거란 우려가 나온다. 연 49만대를 생산해 85%를 미국으로 수출하는 한국GM은 미국의 관세 부과로 철수설까지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GM 생산법인의 고용인력은 2023년 기준 8789명, 연구개발법인 GM테크니컬센터코리아(GMTCK)는 2958명이다. 여기에 한국GM에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사까지 고려하면 수만명의 고용을 책임지고 있다.
cjk@fnnews.com 최종근 임수빈 강경래 권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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