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스페인 '바르셀로나→발렌시아'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안도라를 뒤로하고 드디어 스페인에 왔다.
까스텔폴리트 데 라 로카(Castellfollit de la Roca)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작은 마을로 50m 높이의 현무암 절벽 위에 위치해있다. 마을에 들어가면 정경을 볼 수 없기에 마을로 가지 않고 멀리서 바라보기 좋은 스팟을 찾아왔다. 긴 절벽 위에 붉은 색 지붕의 오래된 유럽풍 집들이 빼곡히 서있는 모습이 신기하다. 우리 말고도 다른 관광객들도 비슷한 위치에서 사진을 많이들 찍었다.

다음은 헤로나(Girona)에 왔다. 주말이어서인지 공원마다 사람이 엄청 많다. 까브리를 길가에 세워두고 골목길을 지나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 촬영지로 유명한 헤로나 대성당을 찾아왔다. 탄과 나, 우리 둘다 그 드라마를 너무너무 좋아했어서 꼭 와보고 싶었다. 생각보다 그리 웅장해 보이지가 않아서 좀 의외였는데 드라마에서는 CG로 처리를 많이 했다고 한다.
게다가 꽃 축제를 하는 중이었는지 계단을 온통 꽃으로 장식해두어서 전혀 다른 곳처럼 보였다. 울긋불긋 꽃계단을 배경으로 왔다간다는 인증사진을 찍었다.
근처를 걷다가 빵집에 진열된 도너츠가 너무 맛있어보여 하나 사보았다. 얼마만에 먹어보는 도너츠냐. 탄이랑 사이좋게 한입씩 먹었다.
이제 한시간 반 거리의 바르셀로나로 간다.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이 그림같이 떠있는 아래 멋진 고속도로를 달린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승용차 한대가 앞에서 비상등을 켜고 창을 내려 손을 내밀며 자꾸 차를 세우라는 신호를 한다.
나는 놀라서 "어? 우리차에 무슨 문제 있는거 아니야? 저 차가 서라고 하는거 같은데?"라고 하자 탄이 조금도 속도를 늦추지 않고 "세우면 안돼. 저거 사기꾼이야."라며 그 차를 앞질러 달렸다. 내가 어리둥절해하자 탄이는, 인터넷에서 봤는데 스페인 등지에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이런 식으로 차를 세우게 해서 바퀴나 후미등이 잘못되었다며 밖으로 나오게 한 후 다른 패가 차안의 물건을 훔쳐가거나 또 다른 범죄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큰 트럭이 보이자 탄이는 그 승용차가 우리 차를 세우지 못하도록 트럭 뒤에 바짝 붙어서 갔다. 탄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탄이가 미리 그 이야기를 알지 못하고 그냥 차를 세웠으면 어떻게 됐을까. 방심했으면 범죄의 표적이 됐을 것이라 생각하니 아찔했다. 현명하게 잘 피한 것을 정말 다행으로 생각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잘 알아차렸다고 탄을 칭찬해주었다.
대도시에는 언제나 범죄가 가장 많이 일어나기 마련이고 우리같이 차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특히 스페인에서 도둑맞은 일이 많다고 들었어서 조심하고 있었는데 정말 사건사고는 한순간이다. 나중에 안전한 곳에서 차를 세우고 까브리를 살펴보았지만 역시 아무 이상이 없었다.

바르셀로나에 와서 가장 먼저 그리고 반드시 봐야할 것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La Sagrada Familia)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과 영상 속에서만 보았던 그 특별한 건물이 내 눈 앞에 있다.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대표적인 작품. 1882년부터 짓기 시작해서 백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완성하지 못한 어마어마한 대공사가 진행중이다.
가우디 사후 100주년이 되는 2026년에 완공할 예정이라고 하니 얼마 안남은 모양이다. 앞을 지나가며 보니 정말 세계 어느곳에서도 보지 못한 특이한 조형의 성당이다. 이것을 어떻게 사람이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까. 가우디 외계인설에 나도 동참하고 싶어진다. 성당 내부는 뭐 다른 곳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며 외부만 감상했지만 터져나오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바르셀로나에서 저녁은 모리츠 맥주공장에서 하기로 했다. 맛있는 생맥주와 음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추천한 장소여서 꼭 와보고 싶었다.
여러가지 맥주를 맛볼 수 있는 샘플러와 맥주캔으로 만든 치킨을 주문했다. 여러 맥주 시음도 좋았지만 치킨은 눈이 똥그래질만큼 정말 맛있었다. 간만에 적당히 시끄럽고 흥겨운 분위기의 호프에서 탄이와 맥주잔을 부딪치며 맛있는 치킨을 먹으니 너무너무 좋았다. 여행 중임을 잠시 잊고 주변 사람들을 보며 일상에 녹아드는 기분이었다.

스페인에서 친구를 사귀고 싶어 여러 사람에게 카우치 요청을 보냈지만 답장조차 안온다. 바르셀로나는 숙소비용도 너무 비싸고 차박하기는 아무래도 위험할 것 같아 하루만에 도시를 떠났다.
고속도로에서 밤을 맞아 화물차들이 쉬었다가는 휴게소 같은 곳에 들어가 차박을 했다. 땅이 편평하고 도로에서 가장 먼쪽에는 찻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아 정말 간만에 꿀잠을 잤다. 도로이긴 하나 스페인이라는 악명 높은 곳이기에 혹시 차창을 깨도 가져갈 것이 없도록 운전석쪽에 웬만한 것들은 다 치웠고 운전석과 통하는 문과 외부로 나가는 문에 온갖 시건장치를 2중, 3중으로 하고 잤다. 다행히 아무 일이 없었다.
바르셀로나 부근의 5월의 아침기온은 약 15도로 다니기 매우 선선하고 좋은 날씨이다. 함께 밤을 보낸 트럭들이 주변에 서있었는데 매우 든든하다. 이런 곳에는 좀도둑이나 강도가 있기 힘들다. 커다란 트럭사이 까브리도 "나도 트럭이다."라는 듯이 끼어있는 모습이 재미있다.
한국의 휴게소와는 비교할 순 없지만 스페인의 고속도로 휴게소에도 식당,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잘 되어있어 캠핑카로 차박하며 여행하기에 매우 좋았다. 게다가 한쪽 구석에서 발견한 신문물. 오물버리는 시설을 발견하고 매우 반가웠다. 누가 봐도 캠핑카에서 오물을 버리는 그림이 아이콘처럼 표시판에 그려져있어서 우리도 까브리를 대고 남 눈치볼 것 없이 오수통을 비우고 변기도 깨끗이 비웠다.
여행하면서 이런 곳은 처음 만나는 터라 너무 좋았다. 항상 오수처리할때면 사람이 하나 없는 허허벌판에 버리거나 낑낑거리며 숙소에 가지고 들어가 화장실에서 버리는 등 마음이 좀 찜찜하고 힘들었었는데 이런 곳이 좀 많았으면 훨씬 캠핑카 여행이 즐거웠을 것 같다. 옆에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도 있어서 오수를 비우고 통도 깨끗하게 헹굴 수 있어 완전 좋았다.
바르셀로나에서 남서쪽으로 4시간가량 달려 발렌시아(Valencia)에 도착했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 이어 스페인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이다. 공원 옆에 차들이 주차한 곳에 빈자리를 발견하고 기뻐하며 주차를 잘했다. 큰 도시는 언제나 주차가 어려웠는데 발렌시아는 주차가 용이했다.
발렌시아는 프랑스의 베르나르씨가 꼭 가보라고 강추한 곳이었다. 빠에야가 그렇게 맛있고 시장에 가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며 반드시 가보라고 권해주셨어서 기대가 컸다. 구글에서 평점이 높은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발렌시아의 향토음식이라는 빠에야와 한국에서도 즐겨먹던 감바스 알 아히요를 본토에서 먹어보겠다며 찾아가는 길이다.
차를 세운 곳에서 조금 떨어져있어 걷기로 했는데 발렌시아의 거리는 우리가 간 곳만 그런건지는 몰라도 유럽의 고풍스러운 건물 같지 않고 수수하고 평범했지만 햇살이 좋아서인지 거리가 무척 예뻐 보였다.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는 길이어서 더 그랬을까?
거리에 빗물받이 우수관에 사람얼굴이 앙증맞게 붙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안티베의 골목이 생각났다.
아랍식으로 타일로 외관을 온통 장식한 집도 지나고 이것저것 구경하며 가다보니 드디어 우리가 예약한 식당이 나왔다. 스페인 식당은 예약을 안하면 못 온다고 그래서 와이파이를 찾아 애써 예약을 하고 왔는데 웬걸, 테이블이 거의 다 텅 비어있다. 그냥 왔어도 아무 문제 없었겠네.
자리에 안내되어 앉자 친절한 서빙하는 분이 영어메뉴를 원하냐고 물어본다. 매우 감사감사. 영어 메뉴가 있어서 다행이다. 예전에 중미를 다닐 때 탄이와 스페인어를 3주가량 배운 적이 있지만 식당서 메뉴를 보는 것은 어림도 없다.
여러 요리들이 있었는데 우리는 생각하고 온 감바스 알 아히요와 바닷가재 빠에야를 주문했다. 일반 빠에야도 있었는데 이왕 레스토랑까지 와서 먹는데 좀 고급지고 맛있게 먹자 싶어서 무리를 했다. 감바스가 나왔는데 오, 한국에서 보던거와는 매우 다르게 커다란 대하만한 새우가 긴 접시에 가지런히 줄세워져 나왔다.


한국에선 동글동글 껍질이 까져있는 중간 정도 크기의 새우들이 올리브오일에 푹 담가져서 나왔는데 일단 모양부터 달랐고 내가 생각하던 그 감바스가 아닌 그냥 되게 멋지고 싱싱하고 고급스러운 새우요리를 먹는 느낌이었다. 뒤이어 빠에야도 나왔는데 일단 비주얼이 대박이다.
커다란 턱이 낮은 쟁반같은 냄비가득 밥이 깔려있고 그 위에 커다란 바닷가재가 통으로 올려있었다. 하지만 먹어보니 쌀이 많이 딱딱해서 부드러운 밥만 먹어본 촌스러운 우리는 빠에야와 친해질 수가 없었다. 게다가 간이 너무 짜서 우리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준비성 좋은 우리는 포장용기를 준비해왔기에 그나마 먹을만한 가재만 싹 먹고 쌀은 박박 긁어모아 통에 담았다. 까브리에 가져가서 저녁으로 더 푹 익혀 먹을 생각이다. 디저트로 사장님이 추천한 홈베이킹 치즈케이크는 라즈베리 잼이 올라간 것이 정말 맛있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N2LrYSYslFY?si=THp9EEoIbPnw_Iwj>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