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소한 소리·매캐한 냄새…재난과 관련된 감각적 자극이 있으면 대단히 불안해진다. 이런 트라우마 반응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는 게 중요하다"
(서울=뉴스1) 권진영 이강 기자 = 경북에서 여의도 면적의 156배 면적을 불태우고 30명의 목숨을 앗아간 산불이 9일 만에 모두 잡혔지만,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의 마음을 다잡는 과정은 이제 시작이다.
현재 체육관·학교 등에 마련된 임시 대피소 곳곳에는 심리상담소가 운영되고 있으나, 직접 상담을 청하는 이재민은 드물었다.
'안도' 뒤에 밀려올 감정·트라우마 인지해야
1일 미국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센터에 따르면 대형 화재를 경험한 생존자들은 초기에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지만 이내 고통·두려움·분노 등 감정이 밀려올 수 있다.
전문가들도 재난 초기에는 현실적 문제들로 트라우마를 인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한목소리로 지적한다.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사회공헌 특임 이사는 "재난 직후에는 정신 건강, 심리 상담보다는 피해 복구·재산 손실 등 현실적인 피해에 훨씬 집중하게 된다"며 "단 처음부터 트라우마를 세게 받는 분들이 계신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대피소에 계신 분 중 불꽃을 보거나 하면 깜짝 놀라고 무서워하시는 분들이 계신다고 들었다"면서 "재난과 관련된 감각적 자극에 불안해지고 재경험(악몽·환시 등) 증상이 나타나는 등 트라우마 반응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어떤 분들은 심리적으로 크게 압박받지 않는다고 말씀하셔도 은연중에 이미 트라우마를 겪고 계신 분도 많다"며 "본인이 자각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이재민 전체를 계속 보살펴 드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노인·어린이…'힘들다' 표현 어려운 이들 들여다봐야
노인과 아동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트라우마 증상을 인지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수 있다.
정 이사는 "젊은이는 복구하고 대응을 시도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지만 노인들은 상대적으로 절망에 빠지기 쉽다"며 "(복구할) 엄두가 나지 않아 압도적인 무력감을 경험하고, 일시적인 해리 증상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전에 괜찮으셨던 분들이 갑자기 기억력·집중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면 치매보다는 트라우마로 인한 해리성 기억상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조언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경북은 2022년 12월 기준 노인 인구(65세 이상) 비율이 23% 이상인 '초고령사회' 지역이다. 조용한 고통을 겪고 있는 노인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세심하고 선제적인 조치가 필요한 이유다.
아동에게는 어려움을 빠져나와 안전한 곳에 있다는 안정감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오현숙 한신대 심리아동학부 교수는 "아이의 기질, 보호자와의 애착 관계에 따라 대응 방법이 달라지겠지만 아이들이 지금 구출되어 자기가 안전한 곳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엄마, 아빠 등 보호자가 자신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잘 보호할 것이라는 믿음이 없으면 더 불안할 수 있다"며 "지금 당장 보호자가 함께 있지 않은 경우에도 버림받았다는 느낌, 혼자 남겨졌다는 불안감이 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제작한 '재해 및 사건·사고 발생 시 아동 심리 케어' 매뉴얼에는 "스트레스 증상으로 심리적 퇴행 현상이 일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무리해서 제지하지 말고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조언이 담겨 있다.
아울러 보호자의 정신 건강 역시 아이의 장기적 심리 건강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될 수 있다.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 이후 실시된 장기 연구에 따르면 PTSD 증상을 가진 보호자가 양육한 아이들은 지진 발생 10년 후 PTSD와 불안 증상이 높은 수준으로 보고됐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