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서 백만장자(millionaire)가 부자의 대명사인 양 쓰인 건 오래 전 일이다. 순자산이 100만달러만 넘어도 대단했던 17~18세기에 통용됐던 용어다. 이후 부의 축적과 자산 인플레가 겹치면서 억만장자(billionaire)가 이를 대체했다. 순자산이 10억달러(약 1조1800억원)가 넘는 대부호가 드물지 않은, 시대적 흐름이 반영된 셈이다.
그러나 '조만장자'(trillionaire)는 아직 생경한 단어다.
미 의회에선 요즘 부자 증세 움직임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여당인 민주당이 상원에서 추진 중인 '억만장자세'가 대표적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사회복지 예산 재원 마련을 위해 극소수 슈퍼 리치들에게 증세를 하려는 방안이다. 10억달러 이상 자산 보유, 또는 3년 연속 1억달러 이상 소득을 올린 약 700명이 대상으로 추정된다. 그러면 미 10대 부호들은 5년간 2760억달러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가장 많이 부담(500억달러)할 머스크는 조만장자의 꿈을 접어야 할 판이다.
법안의 통과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당장 주식, 채권과 같은 자산의 미실현 이익에 대해 최소 20%의 세율을 매기는 방안에 대한 당사자들의 반발이 거세다. 이중과세 성격에 연방대법원이 위헌 판결할 가능성도 변수다. 증세를 해도 바이든의 복지 인프라 예산을 감당하는 데는 역부족인 터에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다는 반론이 제기되면서다. 소득 양극화와 경제 회생이라는 두 갈래 길에서 미국 조야의 선택이 주목된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kby777@fnnews.com 구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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