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환경

사라지는 꿀벌.. 집단폐사 막으려면 제주도 1.8배 크기 꽃밭 필요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5.18 09:55

수정 2023.05.18 13:25

[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세계 벌의 날(5월 20일) 을 앞두고 서울환경연합 회원들이 지난 16일 서울시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서울시가 공원, 가로수 등 공공 녹지공간에 고독성 농약(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사용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2023.05.16. ks@newsis.com /사진=뉴시스
[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세계 벌의 날(5월 20일) 을 앞두고 서울환경연합 회원들이 지난 16일 서울시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서울시가 공원, 가로수 등 공공 녹지공간에 고독성 농약(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사용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2023.05.16. ks@newsis.com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꿀벌의 집단폐사를 막으려면 벌을 위한 꽃·나무밭을 여의도 면적의 1000배가 넘는 30만ha(헥타르) 규모로 확보해야 한다는 환경단체와 대학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꿀벌은 영국 왕립지리학회가 선정한 '지구상 가장 중요한 생물 5종'에 뽑히기도 했다.

'세계 벌의 날'을 이틀 앞둔 18일 환경단체 그린피스와 안동대 산학협력단은 '벌의 위기와 보호정책 제안'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에서 2000년대 중반 시작된 '꿀벌군집붕괴현상(CCD)'은 지금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한국양봉협회는 지난달 기준 협회 소속 농가 벌통 153만7000여개 가운데 61%인 94만4000여개에서 꿀벌이 폐사한 것으로 추산한다.
통상 벌통 1개에 꿀벌 1만5000~2만마리 사는 것을 고려하면 141억6000마리에서 188억8000마리가 죽은 것이다.

지난해 이맘때 꿀벌 집단폐사가 문제가 됐을 때 당시 농림축산식품부는 꿀벌 78억마리(39만여봉군)가 월동 중 폐사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꿀벌 집단폐사 규모는 점차 커지고 있는 추세다.

그린피스와 안동대 보고서는 꿀벌 폐사의 원인에 대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진단하면서도 가장 큰 위협 요인으로 기후변화를 꼽았다.

보고서는 "지구 온도가 200여년 만에 1.09℃ 오르면서 벌이 동면에서 깨기 전 꽃이 피었다가 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라며 "최근 봄꽃 개화일은 과거 1950~2010년대보다 3~9일 빨라졌다"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겨울철 온난화와 이상기상현상 증가는 월동기 꿀벌에 치명적일 수 있다"라며 "재작년에는 10월 초순까지 기온이 비정상적으로 높다가 10월 중순 갑자기 10℃ 이상 떨어져 월동을 준비하는 꿀벌에게 혼선을 줬고 이후엔 12월 24일까지 평년보다 기온이 높다가 같은 달 25일 기온이 급락해 꿀벌이 제대로 월동에 들어가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국내에서는 꿀벌에게 꽃가루와 꿀이라는 먹이를 주는 '밀원(蜜源)'이 빠르게 줄어든 것도 꿀벌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양봉산업법상 밀원식물은 매실나무와 동백나무 등 목본 25종과 유채와 해바라기 등 초본 15종이다.

보고서에 인용된 국립산림과학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밀원은 2020년 기준 14만6000ha로 1970~1980년대 47만8000ha보다 약 33만ha 감소했다. 제주도의 1.8배, 여의도의 1145배 면적의 밀원이 사라진 것이라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특히 천연 꿀 70%가 생산되는 아까시나무의 경우 1980년대까지 32만ha에 조림됐다가 현재는 3만6000ha 정도에만 남아있다.

한국은 벌꿀 사육밀도가 1㎢당 21.8봉군으로 미국의 80배에 달하는 등 세계 최고 수준이다. 원래 다른 나라 꿀벌보다 치열하게 먹이경쟁을 벌여야 했던 한국 꿀벌들은 밀원이 감소하면서 더 힘든 경쟁을 치러야 한다.

보고서는 꿀벌 집단폐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밀원을 30만ha는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ha 밀원에서 생산되는 꿀은 통상 300㎏ 정도로 꿀벌 한 마리가 태어나는 데는 일반적으로 꿀 300㎎ 이상과 꽃가루 130㎎ 이상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1개 벌통에서 사는 꿀벌이 2만마리 정도이고 이들의 수명은 1.5개월가량으로 '연중 벌통에서 태어나는 꿀벌'은 약 15만마리다. 그런데 국내에서 양봉되는 꿀벌 봉군수는 250만개 이상이다.

250여만개 봉군의 꿀벌들이 소비하는 꿀 절반(7만5천t)만 자연의 밀원에서 채취한다고 해도 1ha에 300㎏ 꿀이 나오는 밀원 25만ha가 필요하다.

양봉되는 벌 말고 야생꿀벌들도 고려하면 안정적인 꿀벌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밀원이 최소 30만ha는 필요하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현재 국내 밀원수림은 15만3381ha다. 산림청이 올해 계획한 밀원수림 조성 면적은 150ha로 이 속도로는 30만ha 밀원을 확보하는데 최소 수십 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린피스와 안동대 연구진은 밀원 확보를 위해 국유림과 공유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생태계서비스직불제'와 비슷한 제도를 만들어 사유림에 밀원을 조성할 경우 지원하자고 제안했다. 생태계서비스직불제는 보호지역이나 생태우수지역 토지 소유자가 '인간이 생태계로부터 얻는 모든 혜택'을 유지·증진하는 활동을 하면 국가가 계약을 맺고 혜택을 주는 제도다.

이와 함께 연구진은 밀원수림 조성 시 '종 다양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국내 밀원수는 아까시나무에 집중돼있는데 혀가 짧은 재래꿀벌은 아까시나무에서 꿀을 채취하기 어렵다"라며 "계절마다 다른 꽃이 연속해서 피도록 밀원을 다양화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최태영 그린피스 생물다양성 캠페이너는 "꿀벌 등 수분 매개체에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일은 장기 프로젝트가 돼야 한다"라며 "국무총리 산하에 '벌 살리기 위원회'를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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