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로 본 영화 산업 및 관객 분석
작년 총 영화 관객은 1억2513만 5886명이다. 전년보다 10% 늘었다. 역대급 증가율이다. 하지만 한국영화계는 여전히 우울하다. 규모가 20년 전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관객 2억명 시장’(2013년~2019년)은 이젠 영화계의 “이루어질 수 없는 달콤한 꿈” 같다.
그래도 완전히 회복한 시장이 있다. 관람 등급별로 분석하면 전체관람가 관객은 전년보다 2.2배 증가해 2051만여명이었다. 딱 ‘2억명 시대’의 평균 규모다. 작년 관객 증가 주역은 천만 영화인 ‘서울의 봄’과 ‘범죄도시3’보다 그들이다. 총관객의 16%였던 그들은 어느 정도 12세 관람가(49%)와 호환하기에 시장에 미친 영향은 그 이상이다.
전체관람가 시장의 회복은 연간 관객 증가율보다 더 중요한 신호다. 그 중심에 외부 악재에 가장 취약한 동시에 미래 중심 관객인 유·초등 관객이 있기 때문이다.
유초등 관객은 외부 악재에 가장 취약하다. 코로나19, OTT, 비싼 입장료. 영화 시장의 악재를 뭐라고 진단하든 그들이 가장 방어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관객들이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살아있다”고 “따따따 따 따 따 따따따” 신호를 보낸 것이다. 그러니 영화계가 내놓는 외부 악재는 핑계일 뿐이다.
문제는 한국영화가 그들에게 갈 길이 없다. 한국영화는 ‘노키즈존’이기 때문이다. 당장 설 연휴에 할머니 할아버지 손자 손녀가 함께 ‘자막 없이’ 볼 수 있는 한국영화가 있었나? 봄방학 동안 초등학생 반 모임용 한국영화가 있었나? 'DMZ 동물 특공대'뿐이다. 참고로 이 조건들이 합쳐져 ‘겨울왕국’은 최초의 전체관람가 천만 영화가 됐다.
지난해 전체관람가의 89%가 외국영화 몫이었던 건 코로나19 탓이, OTT 탓이, 입장료 탓이 아니다. 아예 상관도 없다. ‘2억명 시장’ 때도 그랬으니까.
전체관람가 영화를 한국영화계가 만들 수 없는 이유는 있다. ‘애들 영화’는 돈이 안 된다는 계산. 어른들이 안 볼 것이라는 불신. 정말로 그럴까?
‘엘리멘탈’ 관객이 723만명, ‘짱구’ 극장판 2편 관객이 130만명. 웬만한 한국영화보다 더 관객이 많았다. 그래서다. 작년에 유튜브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 ‘캐리 언니와 슈퍼 콜라’와 ‘도티와 영원의 탑’은 의미 있는 도전이었다. 극장판 ‘뽀로로’의 꾸준한 개봉은 말할 것도 없다.
비단 애니메이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에는 전체관람가 ‘웡카’ 1주차 관객이 78만명이었다. ‘웡카’ 예매 관객의 49%가 30~40대다(CGV 기준). 그들은 20년 전 전체관람가 ‘해리포터’ 시리즈 관객이고, 5년 전 전체관람가 ‘알라딘’과 ‘미녀와 야수’의 관객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난해 개봉한 한국영화 ‘멍뭉이’(19만명)가 귀하다.
가령 ‘지구에 와서 초능력 쓰는 외계인 영화’, ‘세상을 지키다가 목숨을 바친 주인공 영화’를 누구에게 어떻게 팔 것인가? 영화 마케터 면접 질문이라면, 초호화 캐스팅, 유명 감독, 블록버스터가 정답이다. 기어코 ‘성인용 영화’로 팔아야 한다. 아무리 초등학생 관객이 호평해도 ‘초딩용 영화’로 파는 건 상상할 수 없다. ‘이티’를 엄마 아빠와 봤던 어린이 관객이 어른이 되어 자녀와 함께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함께 본다는 것은 현재 한국영화로선 상상할 수 없다.
원래 한국영화에 전체관람가가 없었던 건 아니다. ‘우뢰매’ ‘슈퍼 홍길동’도 있었고 ‘말아톤’ ‘우생순’ ‘마당을 나온 암탉’ ‘글러브’ 그리고 ‘집으로...’도 있었다.
그런데 너무 옛날 옛적 영화들이다. 왜 사라진 걸까? 기존 한국영화계가 전체관람가를 포기하고 12세와 15세 관람가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사이 외국 전체관람가 영화를 보고 자란 유초등 관객이 20대가 됐다. 20대의 한국영화 호감도는 4050대보다 현저히 낮다. 한국영화계의 선택이 그런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한국영화가 완전히 무방비는 아니다. 뽀로로, 두다, 호기, 볼트, 자두, 차탄, 신비. 기존 한국영화계는 외면하는 주연 배우들이다. 그들은 4살에서 11살 관객이 12세, 15세, 청불 관객으로 가는 길목에 버티고 있다. 새로운 한국영화계가 출현할 때까지 그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김형호 영화산업분석가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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