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내수를 등에 업고
글로벌 1위 고지 오른 中
격랑의 시간 투지 발휘를
글로벌 1위 고지 오른 中
격랑의 시간 투지 발휘를

2008년 마흔살 쩡위친이 닝더로 돌아왔다. 푸젠성의 닝더는 중국의 배터리 1위 업체 CATL 창업주 쩡위친 회장의 고향이다. 빈한한 농가 외에 눈에 보이는 것 하나 없는 황량한 지역에 첨단 배터리 공장이 세워졌다. 당시 일본 배터리회사 ATL의 핵심 멤버로 있던 쩡이 추진한 일이었다. 세계는 스마트폰 신문물에 빠져들기 시작하던 시기다.
본사는 다른 곳을 원했으나 쩡이 밀어붙였다. ATL에서 독립해 새로운 배터리 영토를 개척하겠다는 구상을 끝낸 뒤였다. 당시 ATL은 일본계 NDK 소유였지만 시작은 그렇지 않다. 선박공학 전공인 쩡과 화학, 전기 분야 박사 4명이 1999년 세운 스타트업이 그 출발이다. 이들은 배터리에서 미래를 보았다. 그렇지만 기술적 문제 해결은 쉽지 않았다. ATL 공장의 좁은 계단에 웅크려 앉아 실험을 밥 먹듯 했다. 미국 벨연구소의 리튬 폴리머 배터리 기술 결함을 해결한 것은 ATL역사에서도 길이 남는다.
초인적 노력 끝에 3년 만에 수익을 냈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TDK에 지분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 쩡을 다시 살려낸 게 예상 못한 스마트폰 호황기였던 것이다. 그 무렵 쩡은 소비재 배터리를 넘어 자동차 배터리 시장에 확신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닝더에서 새로이 기반을 다지며 자동차 배터리 연구개발(R&D) 부서를 신설한다. 이 부서가 독립해 설립된 회사가 CATL이다. 그때가 2011년이었다.
중국의 2011년은 기억할 만한 해다. 당국의 대대적인 전기차 프로젝트가 이 무렵 불이 붙기 시작했다. 중국 전역을 통틀어 전기차 판매량이 1000대도 안 됐던 시절인데 10개 도시 1000대 전기차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특정 지역엔 전기로만 가는 택시를 보조금을 들여 강제로 배정했다. 중국 전기차의 기록적인 성장과 CATL의 성공은 궤를 같이한다.
또 다른 배터리업체 2위 BYD도 마찬가지다. 순서로 따지면 CATL 이전에 BYD가 있었다. 창업주 왕촨푸는 쩡위친보다 두살 위다. 둘은 말할 수 없이 가난했던 유년시절이 있었고 밤낮 가리지 않은 공부로 성공의 길을 찾았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기술을 전공해 시장을 간파하고 문제를 직접 해결한 것까지 닮았다. 다른 점은 왕촨푸의 경우 배터리를 발판으로 이제는 전기차 제국을 향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야금물리학을 전공한 왕이 1995년 선전에서 시작한 휴대폰 배터리 제조업이 BYD의 전신이다. 일본산 배터리를 직접 분해해 원리를 알아낸 뒤 똑같이 만든 일화는 유명하다. 그의 실험실은 놀랄 만한 가성비의 배터리가 쏟아졌다. 단숨에 중국 배터리 강자로 등극했다. 전기차의 운명은 배터리가 결정짓는다. 왕이 망해가는 자동차 회사를 인수하며 전격 전기차 회사를 선언할 때 했던 말이다. BYD는 중국 전기차 시범사업의 최대 수혜주였다. 배터리 생산, 차량 제조까지 수직계열화에 성공하면서 무자비한 비용절감도 이뤄낸다. BYD가 매출에서도 테슬라를 넘어 1위에 오른 이유라고 본다.
세계 배터리, 전기차 시장을 중국 업체 두곳이 휘젓고 있는 현실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2~3년 전만 해도 기술에선 K배터리 우위론이 확고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최근 집계에 따르면 중국 배터리는 지난해 유럽에서도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중국이 아닌 시장에서 국내 업체들을 제친 것은 처음이다. 가성비와 기술 두 가지를 다 잡았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언급한 대로 CATL과 BYD를 키운 것은 중국이 고비마다 풀어놓은 막대한 보조금과 광활한 내수였다. 실패에도 끄떡없는 괴물 같은 기업인의 투지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중국 업체들은 포화상태인 자국을 넘어 이제 해외를 넘본다. "태풍이 사라지면 돼지가 떨어질 수 있다. " 쩡위친은 중국 정부의 보조금을 태풍에 빗대 태풍이 없어질 시간을 대비하자고 여러 번 언급했다. 진검승부는 이제부터다. 우리 기업의 분투를 기대한다.
jins@fnnews.com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