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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법과 폭력의 경계, 정당방위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1.24 17:03

수정 2015.11.24 17:03

[여의나루] 법과 폭력의 경계, 정당방위

"법은 불법에 양보할 필요가 없다"는 법언(法諺)으로 표현되는 정당방위는 용어 자체부터 멋있어 보인다. 법은 멀리 있고, 코앞에 닥친 폭력 앞에 나와 사회를 지켜주는 가장 큰 무기가 무엇일까를 고민할 때 먼저 떠오르는 것이 정당방위다. 총기 사용이 허용되는 미국에서는 치명적 범죄에 대한 공포감이 널리 퍼져 있어 배심원이 정당방위를 폭넓게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2013년 흑인 소년을 총격으로 살해한 백인 짐머만 사건이나 2014년 미주리주 퍼거슨시에서 발생한 백인 경찰관의 흑인에 대한 총격살인 사건을 보면 그러하다. 경찰관 총격살인 사건에는 백인 경찰 대 비무장 흑인 구도가 압도적이라 미국의 법은 흑인에게 더 가혹하다는 지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정당방위 여부가 다양한 사례에서 전개된다.
1990년대 전후에 일어난 '강제키스 혀 절단사건'이나 성관계를 강요한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김보은 사건'은 정당방위 논쟁으로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작년 도둑을 빨래 건조대 등으로 폭행, 뇌사에 빠뜨린 '도둑 뇌사사건'이나 예비 신부를 찔러 죽인 가해자를 살해한 예비 신랑의 '공룡동 살인사건'은 정당방위에 관한 세간의 관심을 이어주고 있다. 천만 영화 '베테랑'에서는 형사 황정민이 안하무인 재벌 3세 유아인에게 얻어맞다가 어느 순간 "지금부터 정당방위다"라고 한마디 뱉고는 반격을 가하기 시작한다. 보통 사람들은 얻어맞다가 반격을 해도 정당방위보다는 맞싸움으로 취급돼 반격의 정당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싸움의 발생 원인과 진행 상황 등 구체적인 경위를 면밀히 분석해서 정당방위 여부를 면밀히 따져야 한다. 특히 폭행 당하는 약자를 도와주기 위해 폭행을 제지하고 나선 경우 정당방위를 좁게 보면 법질서를 수호하려는 시민의 용기를 외면하는 꼴이 된다.

최근 정당방위에 관한 뜨거운 이슈가 경찰과 시위대의 물리적 충돌에서 대두됐다. 지난 14일 대규모 도심 집회에서는 도로를 점거한 시위 참가자가 경찰 차벽 버스의 창문을 쇠파이프로 부수고 이에 경찰은 물대포를 살포, 시위 참가자 중 한 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를 둘러싸고 '닭과 달걀'의 논쟁처럼 누구 잘못이 먼저이고, 더 큰가로 상대방 허물을 들춰내기 바쁘다.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폭력시위다, 과잉진압이다 하며 초점을 어디에 맞출 것인지로 의견 대립이 첨예하다. 차벽 설치와 물대포 사용이 정당한 경찰 공권력 행사인가, 아니면 그 정도가 지나쳐 시위 참가자의 행동자유권을 침해함으로써 그에 대항하는 시위 참가자의 유형력 행사가 정당방위일까.

시위의 자유는 소수파와 약자를 존중하고, 관용과 다양한 견해가 공존하는 '열린 사회'를 지향함에 있어 국가가 보호해야 할 기본권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위해 차벽을 설치하거나 물대포 사용 등으로 과격한 불법시위를 저지할 수 있다. 문제는 언제 어떤 경우 그런 조치를 취할 수 있느냐다.
이에 대하여는 헌법재판소가 그 기준을 설정했듯이 경찰의 불법.폭력 시위를 방지하기 위한 차벽 설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최소한의 범위에서, 물포 발사행위 역시 직접적이고 명백한 위험을 초래하는 시위 때 행해져야 한다. 그리고 차벽 설치도 모든 통행을 금지하는 전면적이고 광범위한, 극단적 조치가 돼서는 안 되고, 아울러 살수를 할 때도 물포와 시위대 간 거리 등 안전을 위한 현장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시위 참가자는 자신이 누려야 할 자유의 외곽에 쳐져 있는 울타리를 올바르게 인식해야 하고, 경찰은 남용과 과잉으로 정당방위 시비에 빠지지 않도록 공권력 행사를 진중하게 해야 한다.

이주흥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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