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과 교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필자가 가장 흔하게 이용하는 것은 인스턴트 메신저상의 단체대화방이다. 주로 고등학교 동기들, 그리고 대학 동기들끼리 만든 단체대화방인데, 매일 무수한 대화가 오고 간다. 대화의 내용은 특별한 것이 없다. 점심 밥상에 대한 자랑, 근사한 경관으로 이름난 여행지에서의 인증샷, 몸 한구석이 아픈데 잘 보는 의사 좀 소개해달라는 식의 그런 소소한 일상의 모습을 공유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평범한 동창생들의 단체대화방에서도 비트코인 열풍이 불고 있는 듯하다. 비트코인에 대한 토론으로 단체대화방이 1시간 넘게 열띤 논쟁을 이어가는 광경이 흔히 벌어지곤 하는 것이다.
맛집, 여행, 건강이라는 3대 주제가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동창생들의 단체대화방에서 비트코인으로 상징되는 가상통화가 대화의 주제로 급부상하는 모습은 매우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단체대화방에 있는 대부분의 지인들이 비트코인의 실질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주식시장의 애널리스트들이 농담 삼아 하는 말 중에 객장에 젊은 대학생들이 많아지면 주가가 고점 근처일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주식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은 투자자들이 외부로 드러나는 높은 수익률을 좇아 시장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주가가 내재가치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는 경험칙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현재의 비트코인 시장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이와 상당히 유사해 보인다. 모든 사람들이 비트코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대학생들이 비트코인 가격변동을 관찰하느라 밤을 지새우고 오기 때문에 정작 수업시간에는 졸기 일쑤라는 푸념도 들린다.
그렇지만 막상 비트코인이 어떠한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해내는 자산인지, 아니면 왜 사람들이 비트코인에 대해 화폐로서의 교환가치를 인정하는지에 대해 물으면 제대로 대답하는 이가 드물다. 투자대상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저 수익률에 매몰돼 자금을 집어넣는 투자자가 급증할 때 어떠한 상황이 발생하는가를 우리는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나 지난 대선의 테마주 열풍에서 익히 보아왔다.
필자는 가상통화와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이 향후 글로벌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인정한다. 과거 e메일의 탄생과 인터넷의 발전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그러나 가상통화의 미래는 열성적인 지지자들이 상상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현재의 가상통화 체계가 다양한 약점을 가지고 있고, 이윤추구에 매달리는 인간의 탐욕이 개발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상통화의 진화방향을 왜곡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이 보여준 엄청난 가격상승에 매료된 투자자들은 다시 한번 냉정하게 판단해 보아야 할 것이다. 가격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제외한다면 도대체 비트코인의 어떠한 특성이 나에게 수익을 가져다줄 것인가에 대해, 그리고 화폐적 특성이 중요하다면 그 교환가치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에 대해 합리적인 대답을 갖고 있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비트코인 투자가 신세계의 지평을 여는 선구자의 깃발이 아니라 끊어진 철교를 향해 달리는 폭주기관차를 목격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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