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진 엔젤리그 이사(변호사) / 카이스트 K스쿨 겸임교수
[파이낸셜뉴스] 유명 스타트업 퇴사를 앞둔 한 직원이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 관련 상담을 요청한 적이 있다.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 스톡옵션을 행사할 것인지 아니면 포기할 것인지를 결정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스톡옵션을 행사하는데 연봉보다 더 많은 1억 원이 드는데(*스톡옵션은 행사비라는 것이 있고, 행사비를 회사에 납입해야 주식을 받을 수 있다), 1억 원을 대출 받아 스톡옵션을 행사한다고 해도 회사가 상장되어 있지 않아 당장 현금화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스톡옵션 행사를 통해 받게 되는 주식은 시가로 계산한 뒤 근로소득으로 취급되기에 받는 연봉에 따라서는 40%에 가까운 세율이 적용된다. 즉 근로소득세를 수천만원 가까이 납부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시가보다 낮은 가격(*보통 스톡옵션을 행사하면 시가보다 낮은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다)에 주식을 살 수 있으면 좋은 것 아닌가 하고 반문할 수 있지만, 그 직원 입장에서는 추가 대출과 근로소득세 등이 부담요인이고 그 주식을 파는 것도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결국 그 직원은 스톡옵션 행사를 포기하고 퇴사했다. 이쯤 되면 스톡옵션은 스타트업 ‘꽃’이 아니라 초고위험 금융상품에 가까운 게 아닌가.
하지만 최근 장외주식 거래가 활성화되고 있다. 그동안 음지에서 브로커에 의해 암암리에 이뤄지던 비상장주식 거래가 정보기술(IT) 기반 플랫폼에 의해 활성화되면서다.
이에 장외주식 거래 플랫폼을 통해 스톡옵션을 행사하고 현금화하는 스타트업 임직원도 늘어나고 있다. 기존에는 스타트업이 크게 성장해도 많은 지분을 보유한 창업자나 업계 넓은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는 엔젤투자자 또는 벤처캐피탈(VC) 등 기관투자자들만 그 성장 과실을 누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실제 스타트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함께 고생한 임직원들에게도 보상이 주어지는 케이스가 하나둘씩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고생하면서 회사를 같이 키워 나간 결과로 받은 스톡옵션을 현금화한 뒤, 그 자금으로 전세금을 마련하고, 결혼자금에 보태고, 대출을 갚는 사례들을 눈으로 직접 보면서 스톡옵션이라는 제도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제대로 동작하기 시작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사례가 더 많이 나와야 앞으로도 더 많은 훌륭한 인재가 스타트업으로 모이고, 스타트업 생태계도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이제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임직원들에게 스톡옵션이 더 이상 ‘휴지’가 아닌 ‘꽃’이 되는 세상을 기대해 본다.
홍승진 엔젤리그 이사는 변호사, 엔젤투자자, 창업가로서 다양한 스타트업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 스탠포드 대학 기계공학 석사, 성균관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벤처투자사인 더벤처스 감사를 역임했다. 변호사로서 수많은 스타트업을 자문했으며 현재 카이스트 K스쿨에서 창업을 원하는 학생들을 돕고 있다. 스타트업 주식 거래 플랫폼 엔젤리그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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