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의 실제 배경 조봉행 검거사건
[파이낸셜뉴스] 이름도 낯선 나라 '수리남', 그곳에 가서 마약왕이 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이 지난 9일 공개됐습니다.
저도 하필 9일 밤에 드라마를 접하게 돼 밤을 꼬박 새우게 되었는데요.
드라마의 재미와 흥행을 차치하고, 이 기사에서는 드라마의 배경이 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수리남에서 콜롬비아의 마약 카르텔(칼리 카르텔)과 손잡고 수리남의 마약왕이 된 한국인 '조봉행'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죠.
MB정부 시절 있었던 '실제' 이야기
우리나라에 조봉행의 이야기가 알려진 것은 지난 2011년. ‘한국 출신 마약왕, 범죄인 인도로 구속기소’ 등으로 소개됐습니다.
그러나 그가 붙잡힌 건 2009년 당시입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이죠. 그래서 영화에서도 '미국 소' 이야기가 나오고, 12~13년 전의 핸드폰이 등장합니다.
충격적인 건 조봉행을 잡기 위해 국가정보원과 국내 민간인 등이 함께 참여했다는 겁니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사건이었습니다.
2009년 7월 23일 오후 5시쯤 브라질 상파울루의 과률류스 국제공항. 권총과 방탄조끼로 무장한 브라질 연방경찰 8명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입국장 주변에 잠복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날아간 국정원 요원들과 협력자 K씨도 현장에 합류했죠.
‘남미 마약왕’ 조씨를 잡기 위해서. 그는 K씨의 소개로 마약 구매자를 만나기 위해 오후 5시에 브라질에 입국할 예정이었습니다.
수리남 밖으로 나오는 걸 한사코 거부하던 조씨를 “이러면 거래 못한다”며 1년 가까이 어르고 달래며 브라질로 유인했습니다.
그런데 약속시간이 넘도록 조씨는 나타나지 않았고, 예정됐던 비행기의 탑승자 명단에도 이름이 없어 브라질 경찰이 철수를 주장했습니다. 마약 거래에서 약속 위반은 흔한 일이었죠.
이때 민간인 협력자 K씨가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조봉행 측과 통화를 시작했고, K씨는 “일정에 차질이 생겨 늦는다고 한다. 조금 더 기다리자”며 브라질 경찰을 설득했습니다.
그런데 이 통화는 거짓이었다고 해요. 철수를 늦추기 위해 K씨가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한 거죠. 다시 초조하게 기다리길 2시간여 조씨 일행이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걸 경찰이 덮쳤습니다. '미국 마약단속국(DEA)'과 '수리남'에서 검거했다는 영화와는 이 부분에서 다르죠?
진짜 'Fishman'은 황정민이었다?
조봉행이 수리남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선박냉동기사로 일하던 1980년대부터였다고 해요. 당시 8년간 수리남에 체류한 적이 있어 현지 사정에 밝았습니다.
조씨는 국내에서 빌라 건축을 미끼로 10억원 가량을 가로챈 뒤 수배를 받다 수리남으로 도망쳤습니다.
1995년 수리남 국적을 취득하고는 생선 가공공장을 차렸습니다. 극중에서는 민간인 협력자인 강인구(하정우 분)가 생선 가공공장을 차린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 생선 공장을 차린 'Fishman'은 조봉행이었습니다.
물론 조봉행은 어업회사에 싸게 제공되는 면세유를 받아 밀매매하는 게 주 수입원이죠. 중국인 등을 미국, 유럽으로 밀입국시키는 사업도 벌였습니다.
하지만 유가 상승과 단속 강화로 사업이 어려워지자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죠. 남미 최대 마약조직인 칼리 카르텔과 손잡고 수리남 내에 밀매조직을 세웠습니다.
그는 현지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고위층과 군, 경찰과도 두터운 친분을 맺었습니다. 당시 수리남에 입국하는 아시아계 승객의 명단을 미리 받아볼 정도였다고 하네요. 당시 대통령이었던 데시 보우테르세 대통령과도 오랜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보우테르세 대통령은 2000년 네덜란드 헤이그의 항소법정에서 열린 궐석재판에서 마약 밀매 혐의로 징역 11년형을 선고받은 바 있는, 실제 마약사범 출신 대통령이었죠.
조씨는 수리남 내 한국 교포들을 포섭한 뒤 이들을 국내에 보내 운반책을 모집케 했습니다. ‘1인당 소지량이 제한된 보석 원석을 남미에서 유럽으로 운반해주면 400만~500만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해 100여명을 모았죠. 주로 형편이 어려운 주부, 대학생 등이었습니다. 그러다 운반책으로 선발(?)된 주무 장모씨가 프랑스로 입국하려다가 파리공항에서 체포됐고, 조씨는 2005년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의 수배자 명단에 오르게 됐죠.
국정원·검찰은 정말 2년 넘게 추적했다
국정원과 검찰이 본격적으로 조씨 검거에 나선 건 2007년 10월. 조씨가 마약을 국내에 공급하기 위해 판로를 모색 중이라는 첩보가 입수되면서부터입니다.
국정원은 조씨를 수리남 현지에서 체포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고 해요. 수리남과는 독립 직후인 1975년 수교를 맺었지만 현지에 대사관이 없는 데다 범죄인 인도조약도 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게다가 마약조직과 연계 가능성이 높은 수리남 치안당국의 협조도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뜻밖의 돌파구가 마련됐습니다. 수리남에서 사업을 하다 조씨 때문에 낭패를 본 K씨(극중 강인구)가 주 베네수엘라 한국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해온 것이었습니다. 이 내용이 국정원에 전달됐고 국정원 측에서 K씨에게 조봉행 검거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위험한 일이었지만 K씨는 고심 끝에 수락했고, 그는 국정원과 미 마약수사기관이 꾸며낸 가상의 재미교포 마약상과 조봉행 사이의 마약거래를 중개하는 척 연극을 하기로 했습니다.
민간인 언더커퍼, 배짱으로 '살해 위기' 모면
K씨는 조봉행, 그리고 그의 부하 몇몇과 한 집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는 비밀유지를 위해 특정 시간에만 국정원 측과 연락을 주고받았죠. 이 부분은 극에서 고증을 잘 해주었죠. K씨는 잠을 잘 때도 베개 밑에 권총을 넣어뒀다고 합니다.
K씨는 국정원과의 통화 사실을 조씨의 한국인 부하 A씨에게 들키기도 했습니다. 살해되기 직전까지 갔죠.
그러나 K씨는 “나를 못 믿겠거든 맘대로 해라. 당신 부하가 하도 말이 많아서 그러지 못하게 내가 장난 좀 친 것 가지고 날 이렇게 대하느냐”고 항의했다고 합니다.
흔들리는 표정이 역력했던 조씨가 “진짜 장난이었느냐”고 묻고는 부하들을 물렸다고 해요. A씨는 거꾸로 조씨의 미움을 사 조직에서 밀려났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K씨와 조봉행 일행이 수리남 수도인 파라마리보의 한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K씨가 “거래할 마약을 직접 봐야겠다”고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식당 내 주차장에 들어서자 입구 셔터가 내려졌습니다.
마약조직원들은 K씨를 차에 태우고는 눈을 가리고 총을 옆구리에 겨눴습니다. 그러곤 “절대 고개를 들지 말라”고 명령했죠. 행선지가 탄로날 걸 우려해서였죠.
그렇게 20여 분 뒤 차가 한 건물의 주차장으로 들어섰는데, 검은 포장의 커다란 코카인 더미 1.2t이 있었다고 합니다. 거래가로만 당시 가격으로 1조원이 훌쩍 넘는 규모. 조씨는 “한국에 보내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물량”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언더커버의 역할, 극중에선 하정우·박해수로 나눴다
민간인 언더커버 K씨는 실제로는 신변이 위험해지면서 2008년 10월 귀국했습니다. 귀국 후에 국정원과 K씨, 미국 마약수사기관은 새 작전을 짰다고 해요.
조씨를 수리남 밖으로 유인해 체포하자는 거였습니다. 우선 미국령 괌을 대상지로 정했고, K씨는 가족에게도 귀국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K씨는 국제통화로 조씨와 마약거래를 이어갔습니다. “미국 마약상이 코카인 1.2t부터 시작하자고 한다. 액수와 송금 방법은 만나서 얘기하자”고 제안했죠.
K씨와 국정원은 심리전도 폈다고 합니다. 조씨의 전화를 일부러 며칠씩 받지 않아 애타게 만들었죠.
결국 브라질로 유인하기로 합니다.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돼 있고 현지 사법당국의 협조도 가능했기 때문이죠. K씨는 “안 나올 거면 거래는 없던 걸로 하자”며 조씨를 압박했고, 마침내 2009년 7월 수리남에서 가까운 브라질 도시인 벨렘에서 접선키로 했습니다.
그러나 브라질 측에서 벨렘도 수리남 마약조직의 영향력이 미치고 있다고 만류하며 장소를 상파울루로 바꿉니다. 물론 조봉행은 거부했고, 다시 어르고 달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결국 2009년 7월 23일 상파울루 과률류스 공항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이미 출소한 조봉행, 그의 근황은 '오리무중'
브라질 연방대법원의 범죄인 인도결정으로 국내로 압송된 조봉행은 2011년 징역 10년형을 선고 받습니다.
이후의 행적은 베일에 쌓여있다고 합니다. 징역형을 온전히 살고 나왔어도 지난해 이미 만기 출소했겠죠. 조봉행은 1952년생, 우리나라 나이로 71세 정도가 됩니다.
루머에 따르면 조봉행은 출소 후 다시 수리남으로 건너갔다고 합니다. 그동안 마약을 밀매해 모아둔 돈으로 그곳에서 호화스럽게 살고 있다고 하지만, 확실한 정보는 아닙니다. 추가 취재가 이뤄진다면 빠르게 알려드리겠습니다.
한편 이 기사는 넷플릭스, 영화사 월광, 퍼펙트스톰필름 등에 협찬을 받지 않고 작성된 기사입니다. 추석 연휴에 드라마 보다가 밤을 새우고, 추석 당일에 출근한 기자가 당시의 기사들을 재가공해 만든 기사이니, 참고 바랍니다.
fair@fnnews.com 한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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