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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대기업 공공 SW 참여 제한 풀기는 더 신중해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1.26 19:25

수정 2023.11.26 19:25

중기납품에 책임전가 안 돼
행정망 먹통 원인 찾아내야
전국 지방자치단체 행정전산망이 시스템 오류로 마비된 지난 17일 오전 서울의 한 구청 통합민원발급기에 네트워크 장애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뉴스1
전국 지방자치단체 행정전산망이 시스템 오류로 마비된 지난 17일 오전 서울의 한 구청 통합민원발급기에 네트워크 장애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뉴스1

행정전산망 먹통 사태는 현재진행형이다. 정부는 지난 25일 이번 사태의 원인을 네트워크 장비인 라우터의 포트 불량에 따른 것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전산망 사고 복구를 하던 초기에 트래픽을 분배해 주는 네트워크 장비인 L4스위치 오류를 추정한 바 있다. 짧지 않은 오류 기간 초기진단과 최종결론에 차이가 났다. 대규모 국가전산망 마비 사태가 이런 결론으로 끝나도 되는 건지 의아할 뿐이다.
단순히 라우터 포트 불량이라는 말 한마디로 이번 초대형 사태를 끝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정부는 여론의 비난을 의식하지 말고 이번 사태의 원인을 엄중히 짚어야 한다. 디지털정부 위상에 타격을 입혔다는 우려에 휩싸여 이번 사태를 적당히 넘어가선 안 된다. 이번 행정전산망 먹통 사태는 정부 특정 부처에 책임을 지울 사안도 아니다.

먹통 사태에 반드시 견지해야 할 두 가지 기준이 있다. 우선, 기본에 충실하자는 얘기다. 우리나라 디지털행정 시스템 구축은 지금까지 속도전이었다. 외부에 보이기 좋고 선전하기 좋은 소재였다. 그래서 외형 확대에 치중한 면이 없지 않았다. 그 대신 시스템 안정성은 뒷전으로 밀렸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시스템 안정을 강조하는 매뉴얼 강화와 예산 배정을 적극 고려해야 할 것이다.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전산망 마비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 파악이다. 달랑 부품 불량 하나로 사태의 원인보고서를 작성할 때가 아니다. 불량 혹은 오류 발생 확률과 실제 사건 발생 시 확인해가는 절차도 중대한 시스템 인프라인 것이다. 그런데 이번 전산망 먹통 사태가 터지고 정부가 초기에 허둥지둥할 때 사태의 원인을 중소기업에 전가한 사례가 있었다. 기술력이 떨어지는 중소업체가 공공 납품을 도맡은 탓에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급기야 공공입찰에 대기업 참여를 막은 기존 제도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팽배했다. 분위기상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와 담당자에 대한 책임에는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됐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떨어지듯 중소기업에 뭇매가 쏟아진 것이다. 실제로 이번 행정전산망 장애를 계기로 대기업의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 참여제한을 푸는 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초 국무조정실 규제혁신추진단이 규제개선 과제로 선정한 방안이다. 대기업의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 참여를 제한하는 법 시행이 올해 시행 10년째를 맞았다.

원래 이 법은 공공시장의 대기업 쏠림현상을 막고, 중소·중견기업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게 취지였다. 그런데 법의 취지 및 내용과 별개인 전산망 마비 사태가 법 개정의 빌미로 작용하는 모양새다. 행안부 발표대로라면 이번 전산망 장애는 하드웨어의 문제이지 소프트웨어에 책임을 돌릴 사안이 아니다. 그런데 전산망 마비 사태가 대기업의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 진출의 빌미가 되는 방향으로 분위기가 돌아가고 있다.

행정전산망 먹통 사태를 주먹구구식으로 끝내선 안 된다. 중소기업의 기술력을 문제 삼는 건 전형적인 마녀사냥이다.
국산 토종 중소기업을 육성해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어야 국가경쟁력이 높아진다는 목소리를 되새겨야 한다. 따라서 이번 사태에 대해 정부는 전문가들도 납득할 정도의 분석을 담은 두툼하고 상세한 보고서를 내놓길 바란다.
관련 예산을 증액하거나 입찰방식을 바꾸거나 그간 언급조차 못했던 내용도 과감히 담아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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