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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기득권 못버리고 환자 외면, 부끄러운 의료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2.19 18:25

수정 2024.02.19 18:25

전공의 집단사직 현장 대혼란
정부 엄정 대응, 공백 줄여야
전공의들이 예고한 집단 사직서 제출 시한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19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을 찾는 환자 및 보호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뉴스1
전공의들이 예고한 집단 사직서 제출 시한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19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을 찾는 환자 및 보호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뉴스1
정부의 의대 증원방침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집단사직에 나서면서 의료현장은 19일 대혼란을 빚었다. 병원 곳곳에서 예정된 수술이 취소됐고, 입원 스케줄은 조정 중이라는 안내가 나붙었다. 이날 오전 전국 수련병원 200여곳에서 1만명 넘는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전공의 사표는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어 진료차질은 더 심각해질 수 있다. 걱정했던 의료대란이 현실화될 수 있는 상황이다.

지금 가장 기막힌 이들은 누구보다 환자와 그 가족들일 것이다.
폐암 말기 아버지가 수술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일정이 취소됐다는 글도 올라왔다. 쌍둥이를 출산할 예정이었는데 수술을 하루 앞두고 연기 통보를 받았다는 환자의 사연도 있었다. 수술을 앞두고 입원했다가 갑자기 순번이 밀려 하루 만에 퇴원한 사례도 나왔다.

우리 의료계는 돌보던 환자의 생명보다 미래 경쟁할 의사 수가 더 걱정이라는 말인가. 19년 동안 동결된 의대 신입생 정원을 늘리겠다는 정부 발표가 이런 결과로 이어진 것에 참담함을 감출 수 없다. 해외 기록을 봐도 의사 증원에 반발해 파업을 벌인 사례가 없다. 해외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임금인상 등 복지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우리의 경우 "의사 부족으로 인한 환자 피해를 전제로 돈을 더 벌겠다는 것으로, 완전히 다른 사례"라는 지적(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필수의료 인력이 부족해 생사가 갈리는 지금의 의료 현실은 정상적이지 않다. 서울, 수도권만 선호해 지역 병원에선 의사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다. 이런 기형적 구조를 바꿔놓겠다고 정부가 꺼내놓은 것이 의대 증원과 함께 필수의료 수가 인상 등 다양한 정책 패키지였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제도 근간을 바꿔 균형을 맞춰 나가야 하고 여기에 의사의 협조는 필수적이다.

의사 수는 객관적 수치에서도 부족하다는 것이 확연하다. 우리나라 의사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적다. 이 순위도 한의사를 제외하면 멕시코보다 못한 수준이 돼 OECD 국가 중 꼴찌로 추락한다. 1000명당 의사 수는 5년새 0.17명 늘었을 뿐이다.

이런 가운데 의사들은 수입이 좋고 업무는 수월한 성형외과, 피부과로 몰렸다. 생명이 오가는 현장의 인력을 늘리기 위해선 파격적인 정원 확대책이 우선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의사협회와 의료계는 정부가 의사를 이길 수 없다며 의료 대재앙까지 언급한다. 지금껏 의료개혁 때마다 의사들은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뜻을 관철시켰다. 지금도 그 방식이 통할 것이라는 생각은 시대착오적이다. 대다수 국민이 불합리한 의료 현실이 개혁될 것이란 기대감을 갖고 있다. 시민단체는 전공의 집단 진료거부를 담합행위로 공정위에 고발하겠다고 나섰다. 2000명 증원 규모는 현장 수요조사를 거쳐 나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날 2000명 증원을 여당의 정치쇼라고 주장한 것은 의정 갈등을 부추기려는 의도가 아닌가 의심스럽다.

의료개혁은 의대 증원뿐 아니라 수가체계와 건보 재정개혁 등 제도 전반을 아우른다.
정부는 뚝심 있게 정책을 추진할 책임이 있다. 정부는 누차 밝힌 대로 의료계의 집단행동에 엄정 대응하고 의료공백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전공의들은 서둘러 환자 곁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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