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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 이사람] IMF위기때 애널리스트 제?인생 펼친 김영진 하이자산운용 이사

김시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1.12.20 18:17

수정 2014.11.20 12:01

"전대미문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이 인생의 전환점이 될 줄 몰랐죠."

하이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 김영진 리서치헤드(이사·사진)에게 IMF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공대 출신으로 한국석유화학공업협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그는 5년 뒤 한화케미칼로 이적한다. 기쁨도 잠깐. IMF 경제위기가 몰아치자 그는 구조조정본부를 거쳐 한화증권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이때가 2000년 8월. 사측은 그를 화학업종 애널리스트로 발령냈다. 당시 금융권에서 비 경상계 출신이 설 자리가 마땅치 않았지만 IMF로 인해 사회경제적 패러다임의 변화가 오면서 제조업 출신의 현장 경험자들에게도 문호가 개방된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격변의 시기에 애널리스트로 변신한 그는 물 만난 고기처럼 제2의 인생을 시작했고 승승장구했다.
이론과 실무 경험이 큰 자산이 됐다.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뽑히면서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우리투자증권과 하나경제연구소, 미래에셋자산운용, KB자산운용 등을 거치며 화려한 이력도 쌓았다.

그는 큰 풍랑 없이 비교적 순탄한 삶을 살아왔다고 자평한다. 월급이 반으로 깎이는 IMF가 전화위복이 됐으니 그럴 만도 하다. 돌이켜보면 그의 이런 삶의 궤적은 신혼여행 당시 어느 정도 예견됐던 것 같다. "여행사 실수로 3박4일을 이 숙소, 저 숙소 옮겨 다녔는데 13평 콘도에서 나중에는 60평 펜션으로 매번 옮길 때마다 숙소의 크기가 커졌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제 인생도 이와 비슷하게 흘러왔던 것 같아요. 점점 발전했지요.(웃음) "

내년 증시전망을 묻자 변동성이 극대화될 것이라고 답했다. 변동성 장세에 살아 남기 위해서는 시장이나 주변에 부화뇌동하지 말고 자신만의 목표수익률을 정해 묵묵히 따라야 한다고 조언했다.
초심과 정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백발이 성성한 노년에 성가대원으로 찬양하기를 소망한다는 그는 지금도 주말이면 교회를 찾아 믿음과 사랑을 실천한다.
그래서일까. 해맑은 그의 목소리에서 경건함마저 묻어난다.

/sykim@fnnews.com김시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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