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균 히포크라 대표 변호사 인터뷰
영리적 목적 미용 성형 환자 안전 도외시
'느슨한' 의료인 면허규제... 윤리수준 낮춰
입증 돕는 수술실CCTV 설치는 '필요악'
의료인에게만 관대한 법원, 언제까지?
[파이낸셜뉴스] 한국 성형외과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기형과 변형을 바로잡는 의술 분과가 미용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오랜 비판에 더해, 기존 상식으론 이해되지 않는 사고가 빗발치고 있기 때문이다.
영리적 목적 미용 성형 환자 안전 도외시
'느슨한' 의료인 면허규제... 윤리수준 낮춰
입증 돕는 수술실CCTV 설치는 '필요악'
의료인에게만 관대한 법원, 언제까지?
2016년 ‘공장식 수술’로 숨진 고 권대희씨 사망사건 이후에도 끊이지 않던 한국 성형외과 사망사고는 올 1월 홍콩 재벌 3세가 수술 중 사망에 이른 사건으로 다시 한 번 도마 위에 올랐다.
환자를 유치하는 의료 브로커까지 합법화하며 성형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고 있는 한국의 현실 가운데 어떤 문제가 자리하고 있는 건지 전문가를 만나 의견을 들어봤다.
■의료전문 변호사의 한탄... "참 안 없어진다"
박호균 변호사(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는 올해로 15년차 의료전문 변호사다. 가수 신해철씨 의료사고 사망사건에서 유족 측 변호를 맡아 집도의 구속을 이끌어내는 등 적지 않은 의료사고 사건을 경험했다.
기자는 지난 5일 서울 서초중앙로 히포크라테스 사무실을 찾아 박 변호사와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눴다. 기자가 심층 취재 중인 ‘권대희 사건’ 유족 측 법률대리를 지난달부터 박 변호사가 맡았기 때문이다.
박호균 변호사는 권대희 사건이 한국 성형외과, 나아가 의료계가 내포한 문제점들이 빚어낸 비극이라고 말한다. 박 변호사는 “많은 비극적인 사건을 보지만 고 권대희씨 사망은 정말 비극적인 사건”이라며 “오래 이런 일들을 계속 (맡아 변호)하고 있는데 참 안 없어진다는 생각부터 든다”고 말문을 열었다.
유독 성형외과 분야에서 권씨와 비슷한 의료사고 사건을 거듭 마주한다는 박 변호사는 “의료사고라는 게 사실 뻔한데, 과다출혈이나 진정제 때문에 호흡곤란으로 심정지가 오고 뇌손상까지 가서 정신없이 이송하지만 손쓸 수 없는 상황이 와서 얼마 못버티다 가는 경우가 반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미용수술하는 병원들이 성업하고 있고 참 비극적”이라며 “왜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가, 어떤 문제일까 생각해보게 된다”고 말했다.
■'권대희 사건' 한국 성형외과 현실 그대로 노출
권대희씨는 지난 2016년 서울 신사역 인근 한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다 과대출혈로 중태에 빠졌다. 긴급히 수혈이 필요했지만 사실상 방치됐던 권씨는 대형병원으로 이송돼 49일을 버티다 숨을 거뒀다. 군 전역 후 창창한 미래가 기대됐던 한 젊은이의 죽음이었다.
그간 권대희 사건은 한국 성형외과의 구조적 문제를 그대로 드러낸 사건으로 평가됐다. 수술하기로 한 집도의가 수술 일부만을 진행한 채 자리를 비웠고 계약되지 않은 의사(속칭 유령의사)와 간호조무사가 이후 과정을 맡았다는 점, 권씨 사망 이후 유족이 삶을 내던지고 매달려 힘겨운 싸움을 벌였음에도 의료진에게 제대로 된 책임을 묻지 못하고 있다는 점 등이 그랬다.
그나마 권씨 어머니 이나금씨가 빠르게 확보한 수술실CCTV 영상을 직접 분석해가며 의료진의 과실을 일일이 입증한 끝에 민사소송에서 병원 측 80% 과실이 인정되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본지 2019년 5월 11일. ‘아들이 죽고 3년, 어미는 아직 싸운다 [김성호의 매직스피커]’ 참조>
하지만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당시 부장 강지성·현 부장 이창수)는 핵심 쟁점이던 의료법 위반 혐의를 의료진에게 적용하지 않았다. 기소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인정되더라도 집행유예 등 가벼운 형벌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유족은 삶을 내던지고 매달리는데 문제 병원은 활발히 영업을 하고 있다. 사고 이후에도 두 차례나 ‘14년 무사고’ 광고를 내걸다 고발되기까지 했다. 권씨와 같은 비극이 재발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는 이유다. <본지 2월 1일. ‘[단독] 검찰, '권대희 사건' 전문감정과 정반대 결론... '봐주기 수사' 의혹’ 외 다수 보도 참조>
■자본에 잠식된 의료... 한국 성형외과 현주소
박호균 변호사에게 이 사건의 의미를 묻자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제시됐다. 자본에 잠식된 의료, 의사들에게 관대한 처벌, 입증의 어려움이 그것이다.
박 변호사는 “한국 미용 성형수술 자체가 영리적인 목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의사들 사이에서) 사람이 잘못될 것이란 생각이 별로 없다”며 “응급상황을 커버할 수 있는 조건들을 갖추려면 돈이 드는데 영리적인 목적으로 이뤄지는 성형수술 영역에선 지출을 줄여야 하고, 부지런히 광고해서 환자를 모아 공장식으로 수술해야지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으니 이런 사단이 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권씨 사례에서 집도의 장모씨가 수술 일부만을 진행한 뒤 다른 수술방으로 옮겨갔고, 마취과 의사와 유령의사(수술 전 언급이 없었던 20대 의사) 역시 권씨 곁을 계속 지키지 않았으며, 독자적으로 의료행위를 수행할 수 없는 간호조무사가 수술방에 홀로 남겨지는 등 문제가 드러난 바 있다. 또한 병원엔 즉각 수혈 가능한 혈액이 없어 이송될 때까지 혈액이 주어지지 않기도 했다.
이 모두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 비용 때문이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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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도 속았다" 의료·법조인도 놀라는 '철통면허'
박 변호사는 의사에게 지나치게 가벼운 책임을 묻고 있는 현행 의료법의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한국에선 의료사고를 저질러도 페널티(벌칙)가 굉장히 약하기 때문에 (의사들이) 사고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업무상 과실치사로 처벌돼도 민사소송에서 배상도 좀 이뤄졌으니 집행유예가 내려지는 경우도 많고 면허규제가 아주 느슨하다”고 비판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지난 2000년 의료법이 개정되며 의사들에게 보다 관대한 처벌이 이뤄지게 된 것이다. 박 변호사는 “2000년까지는 사람이 사망하면 (책임이 인정된) 의사면허를 취소할 수도 있었다”면서 “의료법 개악으로 인해 의사들의 윤리적 수준이 무너지고 일부 미꾸라지가 전체 의료계를 혼탁하게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개탄했다.
실제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한국 의사들은 환자를 상대로 살인·사체유기·절도·강간·성추행 등의 죄를 짓더라도 면허가 취소되지 않는다. 형법상 업무상 과실치사가 인정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면허 정지 역시 이뤄지지 않는다. 고 신해철씨 의료사고 소송에서 집도의가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면허가 살아있는 것 역시 이 때문이다.
변호사·세무사·공인회계사·변리사 등 한국 전문직군 종사자가 형사범죄에서 금고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대부분 자격이 취소된다. 일본·독일·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면허를 취소하거나 면허자체를 교부하지 않는 방법으로 의료인의 면허를 엄격하게 관리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에 대해 박 변호사는 “유독 우리나라 의료법만 의료인의 면허를 다른 전문직에 대한 규제나 국제적 기준에 비추어 부끄러울 정도로 느슨하게 관리한다”며 “2000년 의사출신 국회의원들 중심으로 개악한 의료법이 결국 의료계 전체의 윤리적 선을 무너뜨린 결과를 가져왔다”고 해석했다.
박호균 변호사는 이어 “의사나 법조인들도 이런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며 “심지어는 고 신해철 1심 판결 담당 판사님께서 집도의에게 금고형을 선고하고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이유로 ‘어쨌거나 면허가 취소된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었다”고 덧붙였다. 의료법 개정으로 인한 폐해가 얼마나 드러나 있지 않은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수술실CCTV 설치는 필요악"
마지막으로 지적된 건 의료진의 잘못을 입증하기까지의 어려움이다. 특히 감정제도의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박 변호사는 “한국 의료사고 피해자들은 (의료진의) 잘못을 입증하는 게 굉장히 어렵고, 이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분노하는 경우가 많다”며 “감정이 대표적인데 의료분쟁조정중재원 같이 감정을 전문으로 하는 기관에서 정말 감정을 공정하게 하느냐에 대한 반론이 엄청나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 중재원 가면 다 잘못 없다고 판단한다는 불만들이 엄청나게 많고 곧 폭발할 수도 있다고 본다”며 “피해자들 사이에서 중재원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불만이 나올 수 있고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권씨 유족 측은 의료진의 책임을 입증하는데 있어 다른 의료사고 피해자들보다 훨씬 나은 상황에 있다. 수술실CCTV를 확보한 덕택이다.
이에 대해 박호균 변호사는 “이 사건이 CCTV가 굉장히 필요하다는 걸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다”며 “CCTV가 없었다면 (의료진이) 피가 안 멈춰서 열심히 했지만 사망하게 됐다고 (주장해) 덮일 수도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CCTV가 수술실 내부까지 들어오는 것에 대해선 우려하는 입장이라는 박 변호사는 “원칙적으로는 (수술실 안까지) 오지 않았으면 하는 입장이지만 한국 (성형외과와 의료법의) 현실을 고려하면 수술실CCTV는 필요악”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일명 ‘권대희법’이라고 불리는 수술실CCTV 의무화 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유령수술해도 '상해·사기 아냐', 언제까지 관용만?
동시에 여러 개의 수술실을 열어두고 의료진이 순회하며 수술하는 일명 ‘공장식 수술’과 사전에 약속되지 않은 의사가 환자가 마취된 이후 들어와 대신 수술하는 일명 ‘유령의사 수술’ 등은 한국 성형외과에서 수차례 적발돼 지적된 문제들이다. 그간 입증의 어려움으로 사회적 논란이 된 경우가 많지는 않지만 권대희 사건과 같이 수술실CCTV 등을 통해 드러난 몇몇 사건이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유령수술의 경우 형법상 사기죄나 상해죄, 심지어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까지 다퉈볼 여지가 있음에도 아직 한국에서 의료진에게 이 같은 혐의를 인정한 판결이 나온 적은 없다. 미국과 독일 등 선진국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에 대해 박 변호사는 “수술하다 죽을 수도 있는데 면담한 의사가 아니라 한 번도 보지 못한 의사가 내가 마취되면 나타나서 한다는 게 유령수술이니 말이 안 되는 것”이라며 “상해의 문제도 있고 실제적으로 기망한 거니 사기죄에도 딱 들어맞는다”라고 설명했다.
그에게 왜 한국 법조계가 의사들을 이와 같이 처벌하지 않았다고 보느냐 묻자 “결국 전문직에 대한 신뢰가 작용한 것 아니겠나”라면서도 “지금 미용성형 영역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을 보면 그렇게 점잖게 잣대를 대는 게 맞는가 모르겠다. 상해죄나 살인죄로 책임을 무는 것이 의료계 전체를 정화시키는데 맞지 않느냐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편 박 변호사는 검찰이 권씨 의료사고 핵심쟁점인 의료법 위반 혐의를 의료진에게 적용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지난달 법원에 재정신청을 접수했다. 검찰의 불기소 처분이 합당한지를 가리는 절차로, 유족 측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검찰은 강제로 해당 혐의를 기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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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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