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미 에너지부(DOE)가 지난 1월에 한국을 '민감국가' 명단에 올리면서 외교적 파장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미국과 교섭을 통해 내달 15일 민감국가 지정이 공식 발효되기 전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는 입장이지만, 미국이 어떤 이유로 한국을 민감국가로 분류했는지조차 선명하게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대통령이 나서 '독자 핵 무장' 언급…美 경계심 키웠나
원자력·핵·인공지능(AI)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에너지부는 전날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ensitive and Other Designated Countries List, SCL) 최하위 범주에 올렸다고 공식 확인하면서도 구체적인 사유는 밝히지 않았다.
두 달 가까이 에너지부의 동향을 알지 못했던 정부는, 에너지부의 공식 확인 뒤에도 여전히 미국 측의 판단 혹은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무슨 이유로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 목록에 포함시켰는지 답변을 요청했다"라며 "근거를 확인한 후에 시정을 위한 협의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독자 핵 무장' 관련 여론이 증폭된 것이 핵심 이유일 것으로 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023년 1월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북한의 도발이 고조될 경우 미국의 전술핵을 재배치하거나, 자체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후 학계와 여당에서 독자 핵 무장을 찬성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미국은 대통령과 여당을 통해 독자 핵 무장 여론이 제기되는 것은 '예의 주시'를 넘어 실질적 경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특히 한국이 실제로 '결단'을 내리면 빠른 시일 내에 핵무기 제작이 가능한 능력을 보유했다는 것이 미국의 우려를 키웠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민감국가로 분류될 경우 정부 간 교류는 물론 전문가 차원의 교류에서도 제한이 생긴다. 앞으로 미국이 지금보다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교류를 승인하고, 승인 이후에도 교류의 폭을 제한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김정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한국이 북핵 위협 대응 방안에서 핵 무장을 배제하지 않았다는 것이 미국의 경계심을 높였을 수 있다"라며 "미국은 한국의 여론 추이를 봤을 때 한국과 핵 관련 기술 협력 시 조금 더 주의를 할 필요가 있겠다는 결론을 내렸을 수 있다"라고 추측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도 "바이든 행정부 때 미국의 중요한 대외정책 중 하나가 핵 비확산이었다"라며 "북한의 위협을 받는 한국이 핵무기 또는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대한 유혹을 느낄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고 봤다.
비상계엄으로 인한 '지역 불안정'이 사유?…이스라엘·우크라도 민감국가
반면 아직 '실질적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은 핵 무장론보다는 12·3 비상계엄 사태가 더 근본적인 이유라는 의견도 있다.
시기상 이번 조치는 바이든 행정부의 임기 종료 수일 전에 이뤄졌다. 미국은 비상계엄 사태 때 이를 사전 통보하지 않고, 계엄 발령 후에도 외교적 소통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한국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한 바 있다. 민감국가 지정도 혼란스런 한국 정치 상황에 대한 우려와 불신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은 "민감국가 분류 사유 중엔 '핵 비확산' 외에도 '지역 불안정'이 있다"라며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의 국회 통과 등 정치적 격변이 고려된 조치일 수 있다"라고 짚었다.
김정 교수도 "계엄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정치적 혼란이 길어지면 미국의 견제력도 약화되기 때문에 이를 고려했을 가능성은 있다"라고 분석했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하마스와 분쟁 중인 이스라엘, 중국과 대립하는 대만 등 미국의 우방들이 한국과 마찬가지로 민감국가 명단에 포함된 것도 '핵 무장론'이 아닌 비상계엄이 민감국가 분류의 핵심 사유일 것이라는 주장의 근거로 제시된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지난 11일 국회에서 "일회성 조치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고 발언한 것을 두고도 외교부가 민감국가 분류의 사유를 어느 정도 파악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다만 외교부는 미 에너지부의 공식 확인 이후 "미국으로부터 아직 구체적인 설명을 듣지 못했다"라며 여전히 명확한 이유를 확인하지 못했음을 시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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