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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지켜야 할 것은 제자들이 아니라 환자들이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3.12 18:42

수정 2024.03.12 18:42

서울대 의대 교수들 집단사직 예고
정부, 중심 잃지 말고 단호히 맞서야
방재승 서울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의대 증원 관련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방재승 서울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의대 증원 관련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집단사직으로 정부 압박에 나섰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금의 의료사태 해결에 나서지 않으면 오는 18일 일제히 사직서를 제출하겠다는 것이다. 서울대 의대 비대위 측이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속 교수 87%가 국민과 의료계에 큰 상처만 남기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적극적 행동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고 한다. 비대위 측은 1년 후 의대 증원을 결정하자는 제안도 12일 내놨다.

전공의 파업이 3주 차에 접어들면서 현장 피로감은 극심해진 상황이다. 돌아오지 않는 전공의들, 휴학 대열에 동참하는 의대생들을 돌려세워야 할 책무가 있는 이들이 의대 교수다.
막무가내로 뛰쳐나간 제자들을 붙잡고 혼란을 수습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돼야 마땅한데 도리어 자신들까지 손을 내려놓겠다고 엄포를 놓으니 국민은 기가 막힌다.

말에도 논리가 있어야 설득력을 얻는다. 상처만 남기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집단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교수들까지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나는 것 자체가 상황을 최악으로 이끄는 것 아닌가. 교수 자리를 내놓아도 살아가는 데 전혀 문제가 없는 게 그들이다. 의사로 일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태도의 발로로 보일 뿐이다. 최후의 동아줄이 끊어진 판에 정부로서도 어쩔 수 없다. 중심을 잃지 말고 단호하게 대응하기 바란다.

물러서지 말되 다만 대화의 끈은 놓지 말아야 한다. 의대정원 확대뿐 아니라 필수·지역 의료를 살리기 위한 정책의 당위성을 끈질기게 설명하면서 의료계의 동의를 얻어내야 한다. 정부는 지금까지 의사들 압박에 개혁다운 개혁을 해본 적이 없다.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할 수 없다. 분명한 원칙을 갖고 확고한 개혁 리더십을 보여주는 것이 국민이 바라는 바다.

전공의들의 이탈로 진료에 차질을 빚고 있지만 아직 대란 수준이 아닌 것은 다행이다. '빅5' 병원 등 대형병원에 쏠렸던 환자들이 중견·중소병원으로 분산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형병원은 중증환자를 맡고 경증환자들은 중소병원이 치료하면 된다. 이것이 정상이다.

중소병원이 버텨내고 있는 것은 전공의보다 전문의가 많기 때문이다. 전문의 비중이 80%를 넘는다. 서울 빅5 병원의 전공의 비중은 40% 이상이다. 이런 비정상적 운영으로 사태가 더 꼬였다. 그런데도 수가는 전공의 의존이 심한 대형병원이 중소·전문병원보다 더 높다. 병원 규모를 기준으로 삼은 수가체계 때문이다. 정부는 앞으로 전문병원도 실력이 있으면 상급병원만큼 수가를 받도록 하겠다고 12일 밝혔다. 당연한 조치다. 나아가 실효성 있는 강소·전문병원 육성책도 내놓기 바란다.

교수까지 전공의들과 한통속이 되면서 의료개혁은 더 절실해졌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했던가. 결국은 같은 의사들이었다. 다른 대학 교수들은 서울대 교수들의 뒤를 밟지 말고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지켜야 할 것은 제자들이 아니라 환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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