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금방이라도 터질듯한 '문명의 혹’… 금속으로 빚은 인간의 욕망

유선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1.06 19:42

수정 2025.01.06 19:42

중견 조각가 김병호 '탐닉의 정원’
금속 모듈 조각품 총 15점 전시
물질문명 속 인간의 삶에 물음표
문명 발달은 '욕망 동반' 메시지
아라리오갤러리서 내달 8일까지
수평정원
수평정원
정면의 단면
정면의 단면
323개의 가시
323개의 가시
김병호 '57개의 수직 정원'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김병호 '57개의 수직 정원'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부풀어 오르고 촘촘히 맺힌 금속 타원구들이 화려한 은빛 풍경을 뽐내고 있었다. 그러나 무언가 욕망에 찬 혹처럼 금방 터질 모양새였다. 단단한 금속에서도 미적 유연함이 돋보였다.

동시대 사회 구조에 깃든 현대인의 기계적인 정교함과 현혹적으로 아름다운 예술행위를 결합해 온 중견 조각가 김병호 작가의 개인전 '탐닉의 정원(Lost in Garden)'이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갤러리에서 다음달 8일까지 열린다.

자연을 인위적으로 가공해 조성한 '정원'에 자신의 조형 원리를 빗대는 그는 총 15점의 금속 모듈을 조형의 기초 단위로 활용해 3차원 공간 안에서 구성의 미학을 탐구한다.


지하 1층과 지상 1층 전시장에선 김 작가가 '문명의 혹'이라고 부르는 금속 타원구 형태의 조각들을 조명한다.

방사형의 은빛 조각 '57개의 수직 정원(2024)'은 이른바 '문명의 혹'으로 불리는데, 둥근 금속 타원구가 직선형 구조 위에 빼곡히 맺힌 찬란한 형상을 선보인다.

시야에 가장 먼저 포착되는 것은 빼곡히 돋아난 빛점의 집합이다. 주위의 광원을 반사하는 찬란한 금속 타원구들이 관람객들의 주의를 사로잡는다.

부풀어 오른 구체에서 출발해 그것을 지탱하는 선형의 기둥을 지나 원자재인 금속의 표면을 가늠하게 되는데, 인간이 문명을 이룩했지만 욕망도 함께 동반된다는 메시지가 담긴 듯하다.

지하 1층 천장부터 늘어뜨린 가는 줄에 거대한 몸을 맡긴 채 공중에 뜬 모습으로 가로로 놓인 '수평 정원(2018)'도 바닥 면에 드리운 다채로운 그림자가 관람객들을 현혹한다.

'수평 정원' 속 조형의 얼개를 이루는 직선들이 선형적 도시 풍경을 상징하는 도상이라면, 그로부터 불거져 나온 덩어리들은 비선형의 변종이자 현혹적 미감을 추구하는 욕망의 발현이기도 하다.

1층에는 두 개의 형태로 구성된 회전형 기계 형태의 작품 '두 개의 충돌'이 전시된다. 거울 같은 은빛과 흑연 같은 먹빛의 표면을 지닌 두 모듈이 각자의 회전축을 중심 삼아 상반된 방향으로 회전하지만 절대 만나지 않는다.

규격화된 철재는 곡선을 품은 형태로 재가공됨에 따라 생산 체계 속 부품으로써의 기능성을 잃었지만 새로운 구조 내에서 작동하는 미적 가치를 획득했다.

3층에서는 평면 및 선의 조형성에 주목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네 점의 '정원의 단면(2024)' 연작은 공간에 서거나 누운 자세를 취한다. 무광택의 검은색 피막을 입은 조각들은 전시 공간과 대비를 이루며 곡면의 조형성을 강조한다.

평면성을 극대화해 단면의 두께를 강조한 일련의 조각들은 타원구 형태에서 느껴지는 입체적 화려함과는 대조적으로 현대 물질문명을 성찰하는 김 작가의 시선을 담고 있다.

특히 단면을 본다는 것은 인간의 호기심과 해석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대상을 절단하고 평면으로 드러내는 행위로, 내부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시각적 탐구를 의미한다.

'아홉 번의 관찰(2024)’은 은빛과 검정의 원판들이 겹겹이 쌓여 구성된 평면적 조형성이 돋보인다. 서로를 바라보고 관찰하는 아홉 개의 단면은 반사와 투영을 통해 평면에서 입체적 형태로 변화하며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시한다.


이외에도 '323개의 가시(2024)’는 선적 요소를 강조한 작품으로, 다양한 형태와 질감으로 마감된 금속 조각들이 공간 내에서 고유한 균형과 조화를 이룬다.

아라리오갤러리 측은 "김 작가에게 있어 예술 작품이란 규범, 규칙과 체계 등 사회적 합의에 의해 만들어지는 제품과 유사성을 지니는 대상"이라며 "그의 작품세계는 합리주의에 기반해 구축된 문명사회 속 인간의 삶과 심리에 관한 철학적 질문을 떠올리도록 한다"고 전했다.


한편, 그의 대규모 개인전은 올해 홍콩과 중국 선전에서도 예정돼 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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