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 확산에 24명 참변, 비상 사태
재난 대응체계 총체적 재점검 필요
재난 대응체계 총체적 재점검 필요

경북과 경남 등 전국 동시다발 산불이 닷새째 이어지며 최악의 인명피해를 내고 있다. 26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오후 5시 현재까지 전국적 산불로 24명이 사망하고, 2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긴급담화를 내고 "역대 최악의 산불 확산 고리를 단절하는 데 총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현재 산불 피해면적은 2만㏊에 육박하고, 이재민은 6000여명에 이른다. 2만여명이 대피했다.
경북 동북부 산간지역을 뒤덮은 화마는 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마을을 덮친 불길과 연기를 피하지 못하고 탈출하던 중에 도로와 마당, 차 안 등에서 목숨을 잃었다. 대부분이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들이다. 나흘 전에도 산불 진화에 투입된 진화대원 등 4명이 생명을 잃었다.
국민의 염원과 달리 산불은 계속 번지고 있다. 의성으로 옮겨붙은 산불은 강풍을 타고 울진 등으로 북상 중이다. 산림·소방당국이 소방헬기 80여대, 4000여명의 산불 진화·소방대원을 동원해 진화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불길은 좀체 잡히지 않고 있다. 상승기류를 타고 치솟는 열기둥, 일명 '도깨비불'이 강풍을 타고 밤새 곳곳으로 날려 당국도 속수무책이다. 의성에서 산불 진화헬기가 추락해 조종사가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까지 났다. 산림당국은 "산불영향 구역을 당장에 추산하지 못할 정도"라고 하니, 피해 규모는 더 클 것이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하고 피해를 키운 정부의 책임은 무겁다. 산림·소방 당국과 경찰, 지자체의 안이한 판단과 늑장 대처, 부실한 재난 대응역량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인명 보호가 최우선이다. 당국이 선제적이며 적극적으로 대피명령을 내리고 조치했는지 의문스럽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위험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을 최우선으로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어야 했다.
봄철 초대형 산불은 되풀이되고 있다. 지금 수준의 산불재난 대처·통제 역량이라면 이보다 더한 피해가 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겨울과 봄의 건조한 날씨에서는 땅과 수목이 바짝 말라 작은 불씨라도 튀면 숲은 거대한 화약고로 돌변한다. 기압차로 연중 가장 센 바람이 불어 좀처럼 불길을 잡기가 어렵다. 태풍과 같이 봄철 산불도 예측 가능한 재난인 것이다.
사력을 다해 불길을 잡는 게 급선무다. 인명피해도 더는 없어야 한다. 차제에 산불재난 대응체계를 총체적으로 다시 짜야 할 것이다. 불이 국유림·사유림 가려서 나는 것도 아니고, 불똥이 어디로 튀어 번질지도 모르는데 책임 관할구역 탓만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산림청과 소방청, 지자체로 흩어진 컨트롤타워를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
산불재난을 포함해 소방청이 흡수해 기능을 확대하는 방안, 별도의 재난안전청을 설치하는 방안 등 여러 대안을 고민하기를 바란다. 산불화재 진화·예방 대원 조직을 '노인 공공일자리'로 삼아 경험 없는 고령자로 사람 수만 채울 게 아니라 신체활력이 있는 사람들로 다시 충원해야 한다. 드론·열화상 카메라 순찰 등 조기경보 시스템 및 초동진화 인프라 구축, 노후된 진화헬기 교체와 대형기종 확충, 임도와 활엽수림 방화선 구축 등에 필요한 산불 방재예산도 늘려야 할 것이다. 정치권은 정쟁을 잠시라도 접고 재난 대응에 역량을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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