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언제 감자가 최초로 유입되었는지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확인이 어렵다고 합니다. 다만
19세기 초, 청나라와의 교류가 활발해지는 과정 중에 감자도 자연스럽게 전래하였다고 추정될 뿐이라고 해요. 감자는 한반도의 북부와 동부 산간 지역에서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18세기, 먼저 유입되었으나 춥고 척박한 환경에 적응을 실패한
고구마(당시 '감저')의 대안이 되어준 것이죠. 고구마와 생김새가 비슷하고 북방 만주 지역에서 들여왔다고 해서 '북(北)감저'라고 불리던
감자가 재배가 더 용이해 수확량이 많아지자 고구마를 밀어내고 '감자'가 되었다는 것이 '감자' 이름의 유래라고 전해집니다.
슈퍼마켓에 진열된 감자와 고구마 © pixabay.com / AlbanyColley
감자가 고구마의 이름을 빼앗은 건 우리나라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감자와 고구마의 원산지인 남미대륙의 원주민들은
고구마를 '파타타(Patata)'라고 불렀습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고구마가 먼저 유럽에 전파되면서 이 파타타를 '포테이토(potato)'로 바꾸어 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곧 감자가 유입되자 유럽 사람들도 고구마와 감자를 구분하기 위해 단맛이나는 고구마를 '스위트 포테이토(sweet potato)'로 부르기 시작했고, 그렇게 감자가 고구마 대신 '포테이토'가 된 것이라고 해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우리 민족이 겪은 두 차례의 수난에서도 감자는 없어서는 안 될 식량이 되어주었습니다. 식민 지배 기간 동안 빼앗기고 전쟁으로 황폐해진 우리 밭과 논에서도 열심히 자라주어 구황작물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