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 로펌 접촉 후 화우 선임... '강경대응' 예고
돈만 좇는 강남 일대 성형실태 노출
책임 입증부터 손해배상까지 '첩첩산중'
[파이낸셜뉴스] 강남 병원에서 성형 수술을 받다 중태에 빠져 숨진 홍콩 재벌 3세 보니 에비타 로(Bonnie Evita law·여·35) 유족이 한국에서 법적대응에 나섰다. 홍콩 법원에서 한국 의료진을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한데 이어, 한국에서까지 소송준비에 본격 착수한 것이다.
돈만 좇는 강남 일대 성형실태 노출
책임 입증부터 손해배상까지 '첩첩산중'
지난 2013년 그랜드성형외과 여고생 사망사건, 2016년 권대희씨 사망사건에 이어, 속출하는 강남 일대 ‘성형 의료 사망’ 실태에 경종을 울릴 대형 사건으로 주목된다.
■법률대리인 선임, 한국서 법적대응 착수
7일 법조계와 수사기관 등에 따르면 고 에비타 로 유족 측 관계자가 최근 한국에서 다수 법무법인과 만난 것으로 드러났다. 태신 등 여러 의료전문 로펌이 물망에 오른 가운데, 화우가 향후 한국에서 유족 측 민·형사 소송 법률대리를 맡을 게 유력한 것으로 파악됐다.
에비타 로는 올해 1월 28일 서울 신사동 한 병원에서 성형 수술을 받다 중태에 빠져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으로 이송됐지만 1시간여 만에 숨졌다. 그녀는 35번째 생일을 맞아 한국인 업자 추천으로 해당 병원을 찾은 것으로 전해졌다. 처음 병원을 찾은 1월 21일엔 안면 주름제거 수술을 받았으며, 28일 병원을 다시 찾아 지방흡입과 보톡스 시술 등을 추가로 받았다.
에비타 로는 28일 지방흡입 수술 중 극심한 고통을 호소해 대형병원으로 이송된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의 남편 대니 치를 비롯한 유족 측은 △수술 당시 마취과의사가 없었고 △수술 전 알레르기 반응 테스트를 하지 않았으며 △수술 위험 고지서에 환자의 서명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 측은 사고 직후 한국을 찾아 사태를 파악하고 홍콩으로 돌아가 대책마련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체는 부검을 거쳐 지난달 13일 한국에서 화장됐다.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되며 유족 측은 한국에 입국하지 않고 온라인 추모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들은 현재까지도 한국에 입국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유족 측 신고를 받은 경찰 광역수사대는 사고 직후 수사에 착수해 병원 CCTV 등을 확보하는 등 수사에 나섰다. 의료사고 특성상 전문기관 감정 등 수사기간이 길어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수주 안으로 유족 측 입장이 법률대리인을 통해 밝혀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 번은 실수지만 거듭되면?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은 강남 일대 성형외과와 비전문 성형의원의 비상식적 영업실태를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법률상 허가된 의료 코디네이터가 아닌 무허가 브로커의 알선이 의심되며 △마취과 의사가 상주하지 않는 등 비정상적으로 의료 인력을 운용한 정황이 포착됐고 △기초적인 검사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등 열악한 상황에서 수술을 진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에비타 로 유족 측은 한국 내 성형 의료사고 피해자들이 맞닥뜨리게 마련인 △사실관계 입증의 어려움 △의료진에게 주어지는 경미한 처벌 등의 문제와도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공장식 수술과 유령의사 수술, 병원의 대처능력 부족 등 수많은 문제를 내보인 권대희 사건이 발생한 지 4년 여가 지났지만, 여전히 한국에선 인재에 가까운 성형 의료사고가 거듭 발생하고 있다. 이 모두가 이윤 극대화를 위해 내달리는 미용성형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이다. 국회 차원에서 보다 구조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야한다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권대희 사건의 경우 유족이 수술실 CCTV라는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고 다수 전문기관으로부터 유리한 감정결과까지 받았음에도, 검찰이 집도의 등 의료진에게 의료법 위반 혐의를 불기소처분하는 등 논란이 일고 있는 상황이다.
사건은 지난달 재정신청이 접수돼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본지 2월 22일. ‘[단독] 법원 '권대희 사건' 불기소 들여다본다... 성재호 검사 녹취록 증거 제출’ 참조>
이와 관련해 권씨 유족 측 법률대리를 맡은 박호균 변호사(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는 "미용 성형수술 영역을 보면 마취과의사가 있어야 하고 적합한 시설과 문제를 커버할 수 있는 조건이 돼야 하는데, 개인병원들은 열악하고 혈액도 없고 검사수준도 낮고 상황이 안 되는데도 수술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며 "잘못 쓴 진정제 때문에 호흡곤란이 오고 심정지로 뇌손상까지 가서 119에 전화해 정신없이 이송하지만 얼마 못 버티는 경우가 반복되고 있는데도 미용수술이 성업하고 있는 현실이 참 비극적"이라고 개탄했다.
■손해배상액은 얼마? '입증까지 첩첩산중'
한편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을 것으로 여겨진 상속녀의 사망으로 향후 한국 법원에서 손해배상액이 어떻게 책정될지도 관심사다.
에비타 로의 남편 대니 치는 4일 가족을 대표해 홍콩 법원에 문제 병원 의사 2명 등 의료진 3명을 상대로 손해배상 및 수술동의서 위조 등의 혐의로 소송을 제기했다. 대니 치는 홍콩에 이어 한국에서도 법률대리인을 통해 의료진의 책임을 묻고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에비타 로는 홍콩 의류브랜드 ‘보시니(bossini)’ 창업자 로팅퐁(羅定邦)의 손녀이자, 부동산 투자자 레이먼드 로 카쿠이의 딸이다. 남편인 대니 치와의 사이에 어린 아들 한 명을 두고 있다.
로팅퐁의 사후 레이먼드 로 카쿠이가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은 상황에서, 아내의 사망으로 대니 치는 향후 기대수익 상당부분을 상실했다는 입장이다. 홍콩 법이 한국과 달리 배우자의 대습상속(피상속인의 사망 후 직계혈족 등이 대신 상속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니 치 측은 이로 인한 손실과 아내의 연소득 등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상속분에 대한 손해를 한국 법원에서 인정받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박호균 변호사는 “상속기회 상실과 같은 손해는 우리나라 민법에서는 특별손해로 평가하고 있는데, ‘병원에서 그러한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라는 추가 요건까지 환자 측에서 입증을 하면 예외적으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해 줄 수도 있다”면서도 “특별손해로 평가받기 어려울 가능성이 많고, 평가가 된다고 하더라도 추가요건에 대한 입증의 어려움에 막힐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박 변호사는 위자료에 대해서도 “외국인도 한국인과 동일한 항목으로 (손해배상액을) 산정을 할 수밖에 없다”며 “홍콩 재벌 3세가 사망당시 수입이 많았다면 일실수입(사고로 피해자가 잃어버린 장래의 소득) 손해 부분이 증액될 수 있지만, 홍콩 사람들 수입도 우리나라 직장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큰 차이는 없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인이 유사 사건을 당한 경우엔 배우자의 대습상속이 가능해 사위의 상속분 관련 분쟁은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배우자의 대습상속을 인정하는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국가이기 때문이다.
<알려 드립니다: 대한성형외과학회는 위 기사 중 홍콩 재벌 3세가 성형수술을 받은 올림의원이 성형외과가 아닌 비전문의가 개설한 의원이라며 본지에 정정을 요청해왔습니다.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닌 자가 개설한 의원을 성형외과로 표시하는 것이 의료법에 위배되므로 고치지 않을 경우 법적 조치를 하겠다는 주장입니다. 본지는 이를 받아들여 기사 내용을 수정합니다. >
■파이낸셜뉴스는 일상생활에서 겪은 불합리한 관행이나 잘못된 문화·제도 등의 사례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해당 기자의 e메일로 받고 있습니다. 제보된 내용에 대해서는 실태와 문제점, 해법 등 충실한 취재를 거쳐 보도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제보와 격려를 바랍니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