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재판 지면 빚더미"… 공익소송 위축시키는 '패소자부담주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0.19 17:35

수정 2020.10.19 18:28

무분별한 소송 방지위해 도입
소송비용 부담에 訴제기 주저
공익·의료소송등서 폐해 심해
"액수제한 등 부담완화 시켜야"
"재판 지면 빚더미"… 공익소송 위축시키는 '패소자부담주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의료사고로 아들을 잃은 김모씨는 병원과 지난 7년 간 소송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변호사비와 각종 소송비로 수천만원을 썼다.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소송에 매달린 까닭에 가정 형편도 어려워졌다. 7년에 걸친 소송은 패소로 마무리됐다. 병원은 신용정보회사를 통해 2차례에 걸쳐 구상권을 청구했다.
병원이 지출한 소송비용을 부담하란 것이다. 긴 소송 과정에서 빚더미에 오른 김씨는 수천만원대 병원 청구금액을 감당하지 못했다.

소송에 패소하면 승소한 상대방 소송비용까지 부담하도록 하는 '패소자부담주의'가 공익 목적의 소송까지 억압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소송비용 각자부담주의를 취하거나 공익목적이 인정되면 소송비용을 면제하는 다수 국가와 달리 패소자에게 모든 부담을 지우는 한국의 제도가 부당하다는 지적이다.

소송비용, 패소자에게만 부담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익 목적 소송에 한해서라도 재판비용과 변호사비 등 소송비용을 패소자에게만 부담하도록 하는 원칙을 폐지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고 있다.

한국에서 처음부터 소송비용을 패소자에게 부담시킨 건 아니다. 국제적 표준과 같이 각자부담이 원칙이었으나 1990년 민사소송법을 개정해 패소자부담주의를 원칙으로 채택했다. 소송을 남발하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전문가들은 패소자부담주의의 이점보다 폐해가 크다고 주장한다. 공익소송이나 전문집단을 상대로 한 소송의 경우 공익성은 큰 반면 남소의 우려는 낮은데, 소송비용을 물 게 두려워 필요한 소송마저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패소자부담주의가 대중의 관심을 받은 유명한 사례로는 신안 염전노예 사건이 주로 언급된다. 2014년 2월 피해 장애인들이 섬을 탈출한 뒤 시민단체와 공익변호사들의 도움으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당시 원고 측은 1심에서 일부 패소했고 신안군은 패소한 7명에 대해 697만2000원을 청구했다.

이후 2심에선 추가 피해자 3명에 대해서도 국가책임을 인정하고 위자료 지급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이를 최종 확정했다.

이지은 참여연대 선임간사는 "대의를 생각하면서 했는데 패소비용을 물어야 하는 점 때문에 우리같은 오래된 단체도 주춤하게 된다"며 "더 활발하게 문제제기 해도 변화할까말까 하는 문제들이 있는데 돈 때문에 주저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어 사회적으로도 손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가 3년 전에 (패소자부담주의 폐지에 대한) 의견서를 (법무부에) 냈음에도 답변이 없었다"며 "검찰에 다시 민원을 넣었는데 지금까지 답변이 없다"고 덧붙였다.

"의료소송 승률 1%인데···"


상대가 전문적인 병원 및 의사인 의료소송도 패소자부담주의가 장벽이 되곤 한다. 전부 승소율이 1% 남짓(일부 승소율은 5% 내외)에 불과한 의료소송은 피해가 크더라도 입증하기가 쉽지 않아 소송까지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높은 패소확률에도 장기간 법적 공방을 벌여야 하고, 실제 패소하면 상대 소송비용까지 물어야 해 수천만원의 빚을 지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일부 병원은 다수의 의료사고 피해를 내고도 합의로 사건을 무마하고 영업을 지속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호균 변호사(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는 "군사정부 시절에 문제 제기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 민소법이 개악된 것으로 평가한다"며 "1990년 민소법 개정이 없었다면 의료소송 피해자, 염전노예 피해자, 공익소송 제기한 시민단체가 마주하는 억울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참여연대 등의 시민사회 단체가 대법원과 법무부, 검찰 등에 꾸준히 의견서를 전달하고 있다.
국회에서도 양정숙 무소속 의원이 지난 7월 민사소송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해 상임위에서 논의를 앞두고 있는 상태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 김지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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