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장악해 치안을 책임질 수 있다는 제안을 탈레반으로부터 받았지만 이를 거절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8월 30일(이하 현지시간) 미 행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카불은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이 국외로 탈출하면서 미국은 물론이고 탈레반조차 예상치 못한 속도로 빠르게 붕괴됐고, 치안이 무너져 갱단들이 거리를 장악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때문에 미군 지휘부가 소집돼 탈레반과 협상에 나서 합의을 이끌어냈다.
미 정부 소식통은 탈레반 지도자 압둘 가니 바라다로부터 "2가지 옵션을 제안 받았다"면서 "당신들(미군)이 카불 치안을 책임지거나,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카불 치안을 책임지도록 하라"는 것이 그 제안이었다고 전했다.
카불 통제권 제안을 수용할지 아니면 탈레반이 카불 치안을 책임지도록 할지를 놓고 미국은 후자를 택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8월 31일까지는 아프간 철수를 완료한다고 강조한 터라 카불을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합의에 따라 미국은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하되 미국이 8월 말까지 철수를 위해 한시적으로 카불공항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WP에 따르면 탈레반은 이전만 해도 8월 31일까지 카불을 점령할 생각이 없었다.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아프간 정부가 계속해서 카불을 통제할 수 있을 것으로 둘 다 믿었다.
그러나 가니 대통령을 비롯해 일부 고위 관리들이 휴가를 떠난다고 하더니 실상은 국외 탈출이었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카불 사수' 약속은 공염불이 됐고, 카불은 빠르게 무정부 상태가 됐다.
가니가 아프간을 탈출한 뒤 무정부 상태가 된 카불을 누군가 개입해 치안을 확보해야 했지만 미국은 결국 탈레반에 그 임무를 맡긴 셈이었다.
WP는 무함마드 나시르 하카니 탈레반 사령관조차 상황 전개에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하카니 사령관과 탈레반 군 지휘부는 카불 경계에 머물며 탈레반 지도부의 지시를 기다렸고, 이튿날 1시간도 채 안되는 시간 동안 카불에 진입해 도시를 점령했다.
하카니 사령관은 WP에 "카불 시내에서 군인이나 경찰관을 단 한 명도 못 봤다"고 말했다.
하카니는 "우리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없었다"면서 "너무도 기뻤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전사들 대부분이 오열했다"면서 "우리 누구도 카불을 이렇게 빨리 점령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WP는 탈레반이 치안을 담당하면서 이슬람국가-호라산(IS-K)이 미군을 공격할 수 있었다면서 자살폭탄 테러와 총격으로 아프간인 최소 170명을 포함해 미군 13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비판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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