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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분석> 미 상원 '무기대여법' 통과, 미국식 "회색지대전략 본격 가동"

이종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4.11 17:52

수정 2022.04.11 19:05

美 81년 만에 부활, 만장일치 법안 통과
‘우크라에 ‘핵’ 제외... 무기 무제한 지원’
[파이낸셜뉴스]
미국 워싱턴DC 국회의사당 전경. 사진=미 국회 홈페이지 캡처
미국 워싱턴DC 국회의사당 전경. 사진=미 국회 홈페이지 캡처
미국 상원은 현지시각 6일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물자를 좀 더 효율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무기대여법(Lend-Lease Act)’을 81년 만에 부활,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미국이 2차 대전 당시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절차적 장애 없이 연합군에 물자를 공급할 수 있도록 허용한 법이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이 법안이 통과로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절대적으로 승리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바이든 행정부의 무기 무제한 지원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승리할 수 있다고 서방이 판단했다는 신호’라며 "2차 대전 때 아돌프 히틀러를 물리치는 데 도움을 줬던 조치를 상원이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해 승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상원은 이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전쟁 물자를 지원할 때 필요한 각종 제약을 한시적으로 완전 면제한다고 밝혔다. 집권 민주당과 야당 공화당이 초당적으로 합의한 만큼 남은 하원 통과 및 대통령 서명 절차 또한 신속하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또 바이든 행정부는 이날 러시아 최대 국책은행 스베르은행과 최대 민간은행 알파은행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배제했다. 이 제재로 자산 규모 1조4000억달러(약 1708조원)에 이르는 러시아 은행의 3분의 2 이상이 SWIFT에서 전면 차단됐다고 밝혔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 또한 이날 하원 청문회에서 “러시아가 주요 20개국(G20) 회의에 참석하면 보이콧하겠다”며 러시아의 국제통화기금(IMF) 퇴출을 촉구했다.

영국도 이날 스베르은행과 모스크바신용은행의 해외 자산을 동결하고 올해 말까지 러시아산 석유와 석탄 수입을 모두 중단하기로 했다.

스위치블레이드-600. 미국 국방부가 러시아 탱크를 파괴할 수 있는 소형 공격용 무인기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가운데 이미 전쟁 시작전 소수의 우크라이나군이 해당 무기 작동을 위한 훈련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로이터 통신은 러시아가 침공하기 전 12명 미만의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스위치블레이드’ 무인기를 비롯해 최신 무기들의 운용법에 대해 훈련받았다고 익명의 미 국방부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해 4월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사진=트위터캡처
스위치블레이드-600. 미국 국방부가 러시아 탱크를 파괴할 수 있는 소형 공격용 무인기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가운데 이미 전쟁 시작전 소수의 우크라이나군이 해당 무기 작동을 위한 훈련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로이터 통신은 러시아가 침공하기 전 12명 미만의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스위치블레이드’ 무인기를 비롯해 최신 무기들의 운용법에 대해 훈련받았다고 익명의 미 국방부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해 4월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사진=트위터캡처
■회색지대 전술로 우크라 침공한 러시아 속전속결 저지 당하자 미국판 회색지대 전략 '무기대여법' 가동
이에 대해 반길주 인하대학교 국제관계연구소 안보연구센터장은 "러시아는 전쟁 이전 '회색지대전술'을 통해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전쟁도 평화도 아닌 중간지대 속성을 역이용해 미국과 나토, 우크라이나의 대응태세를 교란했다"며 "러시아의 속전속결이 실패하면서 러시아의 회색지대전술의 빛이 바래는 가운데 되레 미국판 회색지대전략이 부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 바이든 행정부는 병력을 보내 국제안보문제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방식의 문제해결을 꺼려왔다. 2021년 아프가니스탄 철군 결정이 이를 방증한다. 이러한 기조 하에 미국은 러시아가 국제법을 어기며 우크라이나를 전면침공하는 상황에서도 직접적인 군사파병은 하지 않았다. 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될 가능성을 그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사실 치밀한 고려 없이 파병할 경우 끝이 없는 전쟁의 함정에 빠질 것을 우려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반 센터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방치하면 패권국, 미국의 지위는 상실될 우려가 크기에 미국으로선 전쟁을 피하면서도 러시아의 전쟁목표 달성을 잠식하는 방식의 개입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이러한 고민의 해법으로 미 상원은 무기대여법을 통과시킨 것"이라고 짚었다.

무기대여법은 미군이 직접 우크라이나 전장으로 들어가서 러시아군과 싸우는 직접 전쟁은 피하면서도 러시아군과 싸우는 우크라이나군을 제대로 무장시켜 러시아군을 물리치게 유도하는 우회적 관여의 방식이라는 해석이다.

이어 반 센터장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일회성 무기 제공이 아닌 핵무기를 제외한 무제한 무기 및 물자 제공이라는 점에서 회색지대전략의 공세 강화라고 볼 수 있다"며 "회색지대전략의 특징인 모호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해법"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반 센터장은 "무기대여법 상원 통과는 '미국판 회색지대전략이 본격가동'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나토 국가도 비슷한 수순을 밝고 있기에 회색지대전략이 국제안보 차원에서 확산될 개연성도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부차(Bucha)에서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파괴된 러시아군 전차 잔해 사이를 살피며 지나고 있다. 사진=뉴시스
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부차(Bucha)에서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파괴된 러시아군 전차 잔해 사이를 살피며 지나고 있다. 사진=뉴시스
■무기 대여법 원조는 1940년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이 주창,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부활해...
한편, 무기대여법(Lend-Lease)은 1940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주장한 미국의 대연합국 물자지원 계획민주주의의 병기창(Arsenal of Democracy) 정책의 일환이었다.

당시 나치 독일, 이탈리아, 일본 제국을 중심으로 침략 전쟁을 일으킨 진영의 추축국(Axis powers) 세 국가는 방공 협정과 조약을 맺고, 삼국 동맹이라고 불렸다.

무기대여법은 이에 대항하는 연합국 주력 국가들이 대부분 경제적·군사적으로 상태가 좋지 않아 전쟁 수행에 필요한 물자를 지원하자는 취지였으며, 1941년 3월 11일에 시작해 1945년 9월 20일에 원조를 종료했다.

당시, 무기대여법에 따른 지원을 최대로 받은 국가는 1차 대전에서 엄청난 전비로 경제가 엉망이었던 영국이다. 무기대여법 전체 추산 액수인 약 500억달러 중 영국(영연방 전체)은 313억 달러(전체 액수의 60%) 가량을 받았다.

당시 영국은 본토 사정상 감자 외 식량자급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미국으로부터 절실한 식량자원도 엄청나게 공급받았다. 후에는 미국으로부터 들여온 엄청난 물량의 가공햄 통조림 완제품 '스팸'과 영국에서 생산하는 각종 통조림, 전투식량도 상당수가 미국에서 들여온 원재료를 영국에서 가공 처리한 것일 정도였다.

당시 영국요리 '피쉬 앤 칩스'를 생선 대신 스팸으로 만들기까지 했다. 오늘날 불필요한 메일을 일컫는 '스팸메일'도 이 같은 영국의 사정에서 유래했다.

이 외에 이 계획으로 많은 득을 본 것은 당시 구소련이었다. 당시 구소련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혁명과 경제정책의 실패로 자금이 부족했고, 때문에 독소전쟁 초 독일군에게 밀려 때문에 제대로 싸우기 어려운 처지였다.

이때 독·소전 초반에 공업력의 75%, 식량 생산량의 50% 이상을 잃어버린 구소련은 영국의 3분의 1 규모인 109억달러가량을 미국의 무기대여법으로 지원받았다.

구소련은 미국의 '무기대여법'에 따른 무기와 물자의 보급이 없었다면 결국 독일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베를린을 공략하는 데 성공하기 어려웠을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 부차에서 우크라이나 군인이 파괴된 러시아군 전차들을 살피고 있다. 2022.04.07. 사진=뉴시스
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 부차에서 우크라이나 군인이 파괴된 러시아군 전차들을 살피고 있다. 2022.04.07. 사진=뉴시스
■2차대전 영국과 구소련의 반격 계기, 추축국 몰아낸 승리의 원동력...넘치는 식량 지원으로 '스팸메일' 유래
일례로 당시 미국에 의한 전투식량 지원은 428만1910톤으로 구소련이 필요한 식량의 25%에 달했다. 이마저도 공식 목록이 아닌 담당 장교가 훗날 본인이나 구소련의 기록을 바탕으로 정리한 내용이므로 실제 양은 더 많았다고 전한다.

미국은 1차 세계대전에서 전혀 피해를 보지 않았던 데다가 당시 과학기술 및 지형적 이점으로 인해 맘 놓고 생산이 가능한 미국의 산업능력으로 당시 연합국 진영의 전쟁물자 보급을 커버한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 계획은 공짜가 아니라 빌려준 것이다. 전쟁 후 지원품을 직접 돌려주던지 아니면 돈으로 환산해서 이자까지 붙여서 갚아야 했다. 영국도 50년이 지난 2006년에서야 비로소 다 갚을 수 있었다.
구소련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러시아도 우여곡절 끝에 2000년에 6억달러를 변제하고 경제가 조금 나아진 2006년 8월 21일에 전액을 변제했다.

그러나 미국은 입장에선 1차 대전 때와는 달리 제값을 받은 게 거의 없어서 손해보는 장사였다고 전한다.


하지만 '무기대여법' 법안과 협정은 대서양 헌장과 함께 미국과 영국의 "특별한 관계"의 초석으로도 평가받으며 이를 계기로 기존의 최강대국 대영제국을 바통을 이어 받기 시작해 새로운 초강대국의 권위를 얻기 시작했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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