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 조각의 세계화
이번 연재는 '한국 조각'이라는 익숙한 언어를 놔두고 왜 'K-스컬프처'라는 신생의 용어를 선택했는가. 우리 주변에서 최근에 '한국화를 이룬 무엇'으로 체험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K팝, K필름, K컬쳐 등 다양한 흐름 속에서 K-스컬프쳐라는 한국 조각을 조망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K를 접두사로 둔 이러한 용어들이 대개 한국 문화산업의 세계 시장 진출 등을 도모한다고 할 때 순수 예술의 영역에 있는 한국 조각에 이러한 이름을 붙이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또 예술가 개인 주체의 다양한 예술 세계를 K라는 접두사로 묶어내는 일이 가능한 일인가.
순수이든 비순수의 영역이든 어떠한 현상에 '이름을 짓는 일' 즉 명명(命名)은 어디에서나 가능하며 유의미한 일이다. 미술사가들이 르네상스 미술과 바로크 미술 사이에 자리한 16세기 중반의 특별한 미술 양식을 '매너리즘(Mannerism)'이라는 용어로 명명하면서 르네상스와 바로크 사이의 어정쩡한 과도기의 예술 양식을 우리가 비로소 명료하게 이해하게 되었듯이, 명명은 '의미의 범주화'를 실천하는 행위가 된다. 2000년 미술평론가 윤진섭은 서구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나 한국적 특성이 내재한 1970년대 한국의 '미니멀리즘계 추상화' 작품들을 '단색화(Dansaekhwa)'라는 한국어로 명명해서 세계 미술 현장에 소개함으로써 '의미의 범주화'를 실행한 바 있다. 누보 레알리슴(Nouveau Realisme)이 프랑스어로,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가 이탈리아어로, '모노하(もの派)'가 일본어로 세계 미술사에 고유 명사화됐던 사건들에서 보듯이, '단색화'라는 한국어 명명은 세계 미술 현장에 한국 미술을 널리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K-Sculpture'는 K팝, K필름, K컬처라는 용례들과 맞물려 한국 조각을 영문 이름을 통해 세계 미술 현장에 적극적으로 소개하려는 목적을 명확히 한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명명은 언제나 ‘호명(呼名)’의 관계를 전제한다. ‘이름을 짓는 일’이란 ‘이름을 부르는 일’과 필연적으로 연동되기 때문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됐다"고 노래했던 시인 김춘수의 시처럼 명명이란 호명으로 자리 이동하면서 그 유의미성을 담보한다.
그런데 명명으로부터 호명이 실현되는 것은 쉽지 않다. 일제 강점기의 유산인 동양화라는 명칭을 1971년부터 한국화로 개명하자는 김영기의 주장이 비로소 실현된 것은 1982년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구체적으로 호명되면서부터였으니, 한국화라는 명명은 호명에 이르기까지 근 10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앞으로 K-스컬프처라는 명명이 구체화되는 일은 다양한 호명의 사건들이 연이어 지속되면서 가능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K-스컬프처는 과연 무엇이고 어떻게 규정될 수 있을까. 그것의 고유한 속성은 무엇이고 브랜드화는 가능할까. 한국 조각은 언제 시작됐고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가. 오늘날 다원미술의 흐름 속에서 K-스컬프처는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
이 같은 질문들 속에서, 김성호, 조은정, 김하림, 김윤섭, 전강옥, 박수진, 정윤아 등 총 7인의 미술 전문가들은 한국 조각사, 한강조각프로젝트, 공공조각, 동시대 다원화 조각, 조각 시장 등의 범주에서 K-스컬프처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펼쳐놓을 예정이다. 많은 독자의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린다.
김성호 2022한강조각프로젝트 총감독·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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