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골프일반

[그린단상-김영두]Never up, Never in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0.08.02 04:52

수정 2014.11.07 13:33



골프의 명언 중에 톰 모리스가 한 ‘네버 업, 네버 인(Never up, Never in)’이라는 말이 있다.

홀컵에 볼이 다다르지 않으면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아마 라운드를 세 번만이라도 해본 골퍼는 이 명언을 들었을 것이다. 나도 이 말을 머리를 올린 바로 다음 번 라운드에서 남편에게 들었다.

“네버럽, 네버린이라니까.”
남편은 내가 영어를 제법 알아듣는다고 여겼는지 한국말로의 통역은 생략한 채 그렇게 외쳤다.
그린에서의 나의 첫 퍼팅이 컵 근처에도 이르지 못하게 짧았을 때였다.

나는 티샷에서 슬라이스를 냈다. 볼은 산 쪽으로 올라가다가 바위를 맞고 튕겨서 페어웨이로 나왔고, 아이언샷은 토핑을 했다. 다섯 번만인가 여섯 번만에 간신히 그린에 올렸다. 잔뜩 주눅이 들은 채로 그린에 올라와서 캐디가 주워주는 볼을 살펴보았다. 공의 표면이 찢어져 있었다.

나는 남편의 말을 “내버려, 내버리라니까.” 라고 들었다. 그래서 찢어진 볼은 내버려야 하는 줄 알고 수풀 속으로 던져버렸다. 그리고 새 공을 꺼내 방금 쳤던 자리의 근처에 놓고 다시 퍼팅을 했다. 그 순간 남편은 신사답게도 나의 그런 기상천외한 행동에 대해서 아무 지적도 하지 않았다. 18홀을 다 돌고 모자와 장갑을 벗은 다음에야 내게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물었다.

“버리라고 해서 버렸잖아요. 조금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구요.”

남편에게 운전을 배우다가 이혼한 부부가 있다고 한다. 즐거워야 할 라운드가 부부싸움으로 막을 내리는 부부의 이야기도 들었다. 그래서 나는 온화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대답했다.

“누가 버리라고 그랬어.”

하도 얼토당토 않은 대답을 해서일까, 남편의 목소리는 한 음은 올라가 있었다.

“누군 누구야, 당신이 내버려 내버리라니까 그랬잖아요.”

남편의 억양이 ‘미’에서 그쳤다면 나는 ‘솔’로 노래했다.

“무식한 마누라 데리고 볼 못치겠네. 네버 업 네버 인, 볼이 컵에 다다르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 그러니 볼이 컵을 지나쳐 가도록 약간을 길게 퍼팅하라는 말도 못들었어.”

어쩐지 본격적인 부부싸움으로 돌입할 것 같은 전운이 감돌았다.

“흥, 난 그렇게 해석이 안되는데… 위로 올라가지 않으면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다…. 어떤 바람둥이 남정네가 후배 바람둥이를 교육시키는 말 같은데.”

연습장 그물망 안에서만 클럽을 휘두르다 이제 딱 두 번째의 라운드를 하는 왕초보가 무엇을 알겠는가. 나는 마구 잘난 척을 했다.


“야한 아줌마가 야한 쪽으로만 생각 하는구만. 내가 골프 명언집 찾아서 보여줄테니까, 바르게 알아두라구.”

남편은 골프의 선배답게 조용히 타일렀다. 그러나 남편에게서 지청구를 먹고 나자 체면이 말씀이 아니다.


“그런데 여보.정말 그 말은 틀려. 꼭 올라가지 않더라도 들어갈 수는 있잖아. 당신 주특기 있잖아. 뒤에서라든가.뭐 그런거….”

나는 전세를 역전시키겠다는 일념으로, 혀끝에서 맴돌던 말을 기어코 내뱉고야 말았다.

/(소설가)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