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서 한 20대 여성이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금됐다 의문사하면서 촉발된 이란 반정부 시위가 각계각층의 동참 속에 들불처럼 확산되고 있다. 이에 이란 정부가 강경한 진압을 예고해 시위는 향후 더욱 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AFP통신 등 주요 외신은 이란 전체 31개주 80여개 도시에서 24일(현지시간) 동시다발적으로 반정부 시위가 열렸다고 전했다.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느슨하게 착용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구금된 뒤 지난 16일 의문사한 것에 반발하며 시작된 시위가 2009년 부정 선거 의혹에 항의하는 ‘녹색 운동’ 이후 13년 만에 최대 규모로 확산된 것이다.
이란 당국에 따르면 지난 17일부터 시작된 반정부 시위를 군경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군경 5명을 포함해 이날까지 최소 35명이 숨졌다. 인권단체들은 최소 5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란 타스님 통신은 이날까지 적어도 1200명이 체포됐다고 전했다.
군경과 시위대 간의 무력충돌은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외신 보도 등을 종합하면, 보안군은 수도 테헤란을 비롯해 여러 도시에서 실탄을 사용해 시위를 진압하고 있다. 테헤란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경찰이 창문을 향해 사격하는 장면도 목격됐다.
그러나 당국의 과격한 진압에도 반정부 시위 열기는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국제위기그룹의 알리 바에즈 이사는 “젊은 세대가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동 전문 매체 미들이스트아이(MME) 역시 “2019년 시위에는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참여했지만, 전과 달리 이번에는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여성억압 종식이라는 문화적인 요구에 목숨을 걸고 거리로 나섰다”라고 전했다.
정치·경제 위기에 시달려온 이란 국민들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지난해 집권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의 억압적인 통치에 분노를 표출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뉴욕타임스(NYT)는 “테헤란 북부의 고층 아파트에 사는 부유층과 남부 노동계급의 시장 상인들, 투르크족과 쿠르드족이 건국 이후 처음으로 하나로 뭉쳤다”라며 “시위대의 다양성은 경기 침체와 사회 부패, 정치 억압 등 전방위적인 불만의 폭을 반영한다”라고 진단했다.
이란 당국은 시위를 막기 위해 인터넷 연결과 SNS 플랫폼 접속을 차단하고 나섰다. 이란 정보부는 국민들에게 “반정부 세력이 조직한 시위에 참여한 사람은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따라 처벌될 것”이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 압박하기도 했다.
이에 국제사회와 IT기업 등은 지원 의사를 밝히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24일 트위터에 “이란 국민의 인터넷 자유와 정보의 자유를 증진하기 위해 조치했다”는 온라인 성명을 냈다. 그러자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겸 민간우주기업 스페이스X 창업자 일론 머스크는 자신의 트위터에 트위터에 “스타링크를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라이시 대통령은 22일 미국 뉴욕에서 히잡 착용 요구를 거절한 이란계 미국인 여기자 크리스티안 아만푸어와의 인터뷰를 일방적으로 취소하기도 했다.
sanghoon3197@fnnews.com 박상훈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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